'인천, 시인과 만나다' 후보자 한명도 안 와
대개 건설·복지 내걸고 '문화'엔 관심 적어
이제부터는 작은 모임이라도 참여 한다면
지역문화 살찌우고 자신 '문서력'도 키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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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난주 토요일 오후 5시 인천 중구청 근처의 한국근대문학관에 갔었다. 이설야 시인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한국근대문학관의 '인천, 시인과 만나다'란 프로그램 세 번째 순서였다. 이설야 시인의 시집 '우리는 좀 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에 실린 작품들이 이야기의 주제였다. 시들은 인천 동구와 중구, 그중에서도 빈민들의 동네 이야기였다. 50석이 넘는 자리는 금세 꽉 찼다. 통로마다 보조 의자가 더 깔렸고, 뒤에는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도 있었고, 두 발로 걷지 못하는 휠체어를 탄 아저씨도 있었다. 시를 안 읽는다는 요즘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천 시'에 관심을 갖고 참석한 것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응교 교수는 이 자리에 오기에 앞서 시에 나오는 인천의 여러 장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고 했다. 시집에 등장하는 인천과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그 인천을 비교하면서 시인이 말하는 인천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김응교 교수는 "이설야 시인의 시는 인천을 기반으로 한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이라고 했다. 진행자와 시인, 그리고 강의실을 가득 채운 청강생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시를 읽었다. 그렇게 모두는 '동일방직에 다니던 그 애'의 이야기를 읊기도 했다. 인천의 아주 오래된 동네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꿈틀댔다.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해진 인천의 옛 기억이 불려나왔다. '인천의 시'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몄다.

이런 게 바로 문화구나 싶었다. 문화는 먼 데 있는 게 아니었다.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 모여 옛 기억과 장소를 더듬고 그곳에 얽힌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문화는 충분히 누릴 수가 있었다. 주어진 시간, 90분이 지나갈 무렵에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다. 여기에 왜 정치인들은 없을까. 유권자가 10여 명만 모여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6·13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이상스러웠다. 아니, 정치인들이 없었기에 커다란 감동이 밀려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작은 공간에서 짧게 맞이한 그 소소한 문화가 그렇게 귀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엊그제 집에 당도한 6·13 후보자들의 공보물을 넘기면서 자꾸만 지난주 토요일의 '인천, 시인과 만나다'가 떠올랐다. 인천시장 후보들, 인천시교육감 후보들, 구청장 후보들, 누구 하나 '문화'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후보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개는 건설과 복지분야 공약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심어줄 문화 공약은 어디로 숨었는지 좀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문화 공약을 아예 빼놓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문화는 단지 양념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모른다. 정치의 요체가 문화의 힘에 있다는 것을. 어떤 학자는 말한다. 마오쩌둥(1893~1976)과 저우언라이(1898~1976)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문서력(文書力)'에 있었다고.

1등 정치인 마오쩌둥과 늘 2인자에 머문 저우언라이를 구별하는 문서력은 바로 문화적 마인드에서 나오는 인문적 크기를 말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문서력이 풍부한 후보자가 없다고 해서 아예 선거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그 가능성이 높은 이에게 표를 던지면 되니까 말이다. 문화는 처음부터 커다란 게 아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마련이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문화 모임에도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지역의 문화도 살찌우고, 그 정치인 자신의 문서력도 키우는 일이 될 터이다. 문화는 정치적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문화는 양념이 아니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