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701001222700061241.jpg
4일 오전 광주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서 현장 실사를 나온 현대자동차 실무진들이 개발업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에게 산단 개발 현황과 완성차 공장 부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광주시가 '반값 연봉'을 내세우며 광주형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하는 완성차 공장 설립 사업에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가 합작법인 형태로 광주에 조성되는 완성차 공장 관련 투자를 거의 확정 지은 가운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임금 하향 평준화와 고용불안을 이유로 반대하는 노조와의 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자동차 위탁생산을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하는 게 처음인 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할 전망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오는 19일 광주시와 합작법인 형식의 완성차 공장 설립을 위한 협약 조인식을 할 예정이다.

새 합작법인에 2대 주주로 참여해 전체 투자금액의 19%가량인 약 1천300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이 공장에서 1천㏄ 미만인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생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현재 울산 공장 등에서 생산하지 않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신차다.

1천㏄ 미만이라 경차 급이지만, 수요가 한정적인 경차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차별화를 둘 수 있는 SUV 형태가 될 것이라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최근 '레오니스'란 이름의 상표권 출원을 완료했다. 업계에서는 이 이름이 향후 광주 공장에서 생산할 경형 SUV의 모델명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가 광주 공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로 한 건, 현재 국내 다른 공장에서 생산 중인 차종을 위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에 따르면 사측이 생산 일부를 외주 처리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것이 기존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칠 경우, 계획 수립 60일 전 노조에 통보해야 한다.

이어 노사공동위원회가 해당 계획을 심의·의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광주 공장에 현재 생산 중인 물량이 넘어간다면 노조는 그만큼의 고용을 잃는다는 이유로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생기게 된다.

반면에 아예 새로운 물량을 광주 공장에 추가로 배정한다면 노조와 별도 협의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단협 위반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게 현대차의 입장이다.

그러나 단협상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일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현대차는 경형 SUV 생산과 함께 늘어나는 고용을 기존 조합원이 기회비용으로 인식해 고용 안정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명분이 낮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조는 연봉이 반값인 근로자에 대한 위탁생산으로 기존 조합원의 고용불안이 야기된다는 점을 들어 현재 생산 중인 차종이 아니어도 노사공동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는 정규직 임금수준을 4천만원으로 하향 평준화해 후퇴시킨다"며 "임금 하향 평준화와 조합원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광주형 일자리 투자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위탁생산 문제는 아직 초기 단계인 현대차 노사 임금·단체협약 협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노조는 올해 기본급 대비 5.3%인 11만6천276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등을 회사에 요구했으나 사측은 경영악화 및 판매부진 등을 이유로 임금 동결을 제시한 상황이다.

노조는 앞서 낸 입장자료에서 "회사가 경영 위기와 수익성 악화를 불러오는 (광주 공장) 투자를 강행한다면 올해 임금협상 투쟁과 연계해 총력 반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단협 내용을 둘러싼 해석 차이로 노사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투자를 확정한 만큼 사측이 물러날 리 없고, 노조는 임단협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강 대 강으로 맞붙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반발을 잘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해도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현대차가 풀어가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자동차의 위탁생산 모델 자체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아차는 이미 동희오토에 경차인 모닝과 레이를 위탁해 만들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와 손잡고 위탁 생산하는 사례는 현대차가 처음이다. 기업 차원에서 공동 사업할 때와는 운영 방식이나 의사결정 구조 등이 달라 초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거쳐 내놓은 모델이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수익성이 악화한 현대차로선 추가적인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임금을 동종업계의 절반만 받기로 한 광주 공장 근로자들이 나중에는 생산성 등을 내세우며 업계와 같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기존에 해보지 않은 방식을 시도하는 만큼 현대차에도 새로운 도전"이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차를 공급받고 판매해 고용을 유지하는 선순환을 이루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