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통해 조부의 상속재산이 있는 해외계좌 1천조 원을 들여오면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라며 작업경비를 빌려달라고 속여 30억 원을 뜯은 사기꾼들이 기소돼 재판대에 선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형진휘 부장검사)는 25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이모(62)씨 등 사기단 4명을 구속기소하고 자금조달에 관여한 나머지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 2015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해외 상속재산을 몰래 들여오는 데 경비가 필요하다며 피해자 6명에게 약 30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사기단의 국내 총책인 이씨는 재력가 행세를 하며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이 미국과 영국 등지에 1천조원 넘게 있는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 등은 상속자금의 일부로 미화 1천786억 달라(약 200조 원)가 찍힌 영국계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보여주면서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 질리언(zillion) 파운드'의 은행 펀드 잔고를 인증한다고 돼 있는 미국계 은행의 가짜 인증서도 피해자들의 신뢰를 사는 데 동원됐다. '질리언'은 구체적인 수 단위가 아닌 셀 수 없이 많은 수를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다.

이들 사기단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면 국정원을 상대로 한 로비 자금이 필요하다며 경비를 빌려주면 수십배로 갚아 주겠다며 피해자들을 꼬득였다. 구속기소된 전모(62)씨는 국정원 등 주요기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실력자 행세를 보이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주로 60대 장년층이고, 일부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 지인에게 돈을 빌려 가면서까지 사기단에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피해자는 피해 금액이 10억 원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자신들이 사기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해외로 달아난 자금모집책 1명을 지명수배하는 한편, 해외에 이씨 일당과 범행을 공모한 다른 공범들이 있다고 보고 국제공조를 통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송수은기자 sueun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