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낸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이 당시 해당 재판을 진행 중이던 대법원에 전달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사법행정 담당기관인 법원행정처가 정치적 폭발력이 큰 사건을 심리하는 대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려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고 보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대법원의 재판을 놓고 법원행정처에서 여러 문건을 작성한 사실은 익히 알려졌지만, 실제 재판에 영향을 줬다는 직접적 증거는 뚜렷하게 나오지 않던 상황에서 해당 문건이 대법원에 전달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수사가 새 국면을 맞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최근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016년 6월 '통진당 사건 전합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 문건이 유해용(52) 당시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물증을 확보했다.

문모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이 작성한 이 문건은 통진당 의원들이 "의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할지를 검토하는 내용이다.

문건은 전합 회부의 득실을 따지면서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사법부에 있음을 더욱 명징하게 외부에 알릴 수 있다"고 적었다. 상고기각·파기환송 등 최종 결론이 헌법재판소와 위상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다각도로 분석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의원들의 직위 상실 여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놓고 헌재를 견제하고 있었다.

검찰은 당시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었고, 대법원 재판을 총괄 검토하는 수석재판연구관에게 문건이 전달된 점으로 미뤄 재판개입이 실제로 시도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에서 이 문건이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대법원에 전달됐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검토만으로도 "전원합의체 회부 권한을 가지는 담당 소부(小部) 소속 대법관의 재판 권한을 침해하거나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유 전 수석연구관이 대법원 재직 당시 통진당 의원들 소송 관련 문건 이외에도 재판개입이 의심되는 법원행정처 문건을 다수 받아본 정황을 잡고 실제로 대법원 소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수사할 방침이다.

이와 별개로 지난 5일 유 전 수석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와 판결문 초고 등 수백 건의 기밀자료를 대법원에서 들고 나간 사실도 확인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다룬 문건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이들 자료를 현장에서 압수하지 못했다.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의 특허소송 관련 문건 1건만 압수수색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전날 재차 기각되자 "유 전 수석연구관의 기밀자료 불법반출 혐의를 고발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이날 고발 요청을 거절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검찰이 이미 사건을 인지해 수사하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그 범죄 혐의의 성립 여부를 검토하고 고발 등의 방법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유 변호사가 보관한 문서 등은 그 보유 여부를 확인해 회수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오는 9일 오전 10시 유 전 연구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법원행정처의 구상을 실제 대법원 재판에 반영했는지, 대법원 기밀자료를 어떤 경위로 반출하게 됐는지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의 요청에 따라 김 원장의 특허소송 상대방을 대리한 법무법인의 수임내역 등을 수집해 청와대에 건넸다는 의혹도 조사대상이다. 검찰은 불법적으로 수집된 이들 자료가 표적 세무조사 등 상대에 위해를 가하는 데 쓰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