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진술을 결정적 증거로 삼아 유죄를 인정한 강제추행 사건을 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는 등 논쟁이 빚어진 가운데 법원이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 대해 이번에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확실한 물증이 없는 사건이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 있느냐에 따라 유·무죄를 다르게 본 판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S(67)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S씨는 지난해 10월 인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자신의 10대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A양의 엉덩이를 손으로 한 차례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S씨는 장애를 가진 딸이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자 하굣길에 동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양과 친구들은 S씨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며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현장에 폐쇄회로(CC)TV 영상 등 물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A양과 친구들의 진술은 S씨가 기소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진술은 흔들렸다.

A양은 "S씨가 만진 것 같다"며 추측성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양 친구들도 수사기관에서의 주장과 달리 "잘 모르겠다. 우리끼리 그렇게 (목격했다고) 하기로 했었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4월 1심은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S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 판단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2심은 A양 등이 S씨의 눈빛을 거론한 것에 대해 "A양의 친구들이 지나가는 S씨의 딸을 여러 번 불렀는데도 딸이 이를 무시했다"면서 "다른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딸의 이런 반응 때문에 쳐다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초 목격자가 실제로는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유죄의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판결은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최근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B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사건과 대비된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사건이지만,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발생한 B씨의 사건 역시 피해자의 진술이 유력한 증거였다. 현장 CCTV가 있었지만, B씨가 피해자를 만졌다는 시점에는 동작을 가늠하기 어려운 영상만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해 내용과 B씨의 언동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는 점을 들어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이 판결을 두고 B씨의 부인이 이달 6일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리면서 나흘 만에 24만5천여명의 동의를 얻었고, 글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이들 간의 유·무죄 논쟁이 확산하기도 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결정적 물증이 없는 강제추행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지를 법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