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의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발생한 폭발 및 화재가 17시간만인 8일 오전 3시 58분께 가까스로 진화됐다. 이 사고로 490만ℓ용량의 옥외 유류탱크 1기가 완전히 파괴됐다. 승용차 10만대를 채울 수 있는 휘발유 440만ℓ 가운데 266만3천ℓ가 소실됐다. 사고가 나자 소방당국은 최고 수준인 '대응3단계'를 발령하고 화학차 44대, 헬기 5대 등 장비 224대와 소방력 684명을 동원했다. 대응3단계는 현행 지방자치단체의 소방시스템으로서는 최고수준의 대응이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소방력이 총동원되고 이것으로도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인접한 지자체의 소방력까지 총동원된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로까지 이어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그만큼 심각한 사고였다.

수도권 인구밀집지역에 위치한 대형 유류저장시설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로 수많은 주민들이 휴일 내내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고양 사고현장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기둥이 화산 분화 때처럼 수백 m 상공으로 솟구쳐 오른 뒤 수십 km 서울 하늘을 가로질러 퍼져나가는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고양 저유소에는 모두 20개의 유류저장탱크에 7천700만ℓ의 휘발유가 저장돼 있다. 만약 불이 다른 탱크로 번졌더라면 그저께 이 지면을 통해 지적했던 것처럼 실로 어마어마한 재앙으로 비화할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그래서 최첨단 운영시스템의 오작동, 국가중요시설이나 이에 준하는 시설에 대한 방재관리의 부실, 현장인력의 실수 등 원인을 정확히 가려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인근 공사장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띄워 올린 '풍등' 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경찰에 긴급 체포된 27살의 스리랑카인은 사고 당시 저유소 인근의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렸다. 이 풍등이 300여m를 날아가다 저유소 잔디밭에 떨어지며 불이 붙었고, 이 불씨가 저유탱크 유증환기구로 튀면서 폭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고양 외에도 판교, 천안, 대전 등 대형 유류저장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곳은 모두 인구밀집지역이다. 이번 사고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원인이 엄청난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일들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방재시스템으로는 재발방지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