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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김근태 사건' 검찰, 알았지만 덮어. 사진은 박종철 열사 영정. /연합뉴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1987년 검찰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청와대와 당시 국가안전보장기획부(안기부)의 외압에 굴복해 졸속·늦장·부실수사했다고 결론 내렸다.

박 열사 사건 은폐·축소 의혹은 같은 해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시위하던 연세대 이한열 열사가 경찰 최루탄에 사망 위기에 처한 상황과 맞물려 6월 항쟁을 부르는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1987'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11일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검찰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 조작할 기회를 줬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1987년 1월 14일 박 열사가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경찰 5명에게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하자 직접 수사를 하려 했으나, 같은 달 17일 검찰총장이 안기부장,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치안본부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손을 떼라'는 압력을 받고 이에 굴복했다고 전했다.

또 고문을 가한 경찰 2명이 검찰에 송치되자 나머지 공범 3명의 존재를 알고도 외부 폭로가 나올 때까지 숨기거나, 박 열사가 사망한 고문실의 폐쇄회로(CC)TV 확인을 생략하는 등 속성·날림 수사를 한 점도 확인했다고 했다.

치안본부장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사인을 밝힌 데 대해서도 검찰은 치안본부장이 거짓 발표를 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어진 수사에서 "직접 사건 조작·축소에 가담 혐의가 없다"며 그를 무혐의 처분하는 등 수사 의무를 저버렸다고 과거사위는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과오를 통렬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검사·수사관을 교육하고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제도를 만들라고 권고했다.

다만 검찰이 사건 발생 초기 치안본부의 조작·은폐 시도를 막고 부검을 지휘해 사인이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임을 밝혀낸 점,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 열사 아버지를 찾아가 사죄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거사위는 이날 고(故) 김근태 전 의원 '고문은폐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의 중대한 과오가 인정된다고 보고 유족 등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은 1985년 9월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3일간 강제감금·고문을 당한 김 전 의원이 검찰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하고 수사를 요구했으나 묵살했다는 의혹이다.

김 전 의원은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형이 확정됐다. 이후 활발한 정치 활동 속에서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는 2011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치안본부의 김 전 의원 고문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으나 안기부와 공모해 이를 은폐했고, 오히려 고문 경찰관에 대한 고소·고발을 무혐의 처리하는 등 사건 조작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경찰의 고문 수사를 용인, 방조하고 은폐하는 데 권한을 남용했다"며 "남용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과 피해 당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했다.

또 정보기관이 안보사범 등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통보받거나 사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안보수사조정권' 관련 대통령령에 대해서는 "냉전이데올로기 시절 권위주의 정부의 유물에 불과하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