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역사 그려
임하도 폐교서 담은 단원고 학생 작품앞
눈물짓던 젊은 여성 보니 미안한 마음…

작품 속 학생들은 주로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반별로 나름의 신호처럼 서로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저쪽에서부터 보면서 오던 어느 젊은 여성이 한참을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살피려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여성은 울고 있었다. 눈 주위는 붉게 물들었고,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춰 서 있었던 거였다. 아,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있었단 말인가. 사진과 영락없이 정말 잘 그렸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기는 했지만 눈물까지는 나지 않았다. 눈물짓던 그 젊은 여성을 보노라니 갑자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화가들도 함께 관람했는데 그들은 저 작품은 무슨 재질의 도구를 썼고, 무슨 기법으로 그렸는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들 역시 아이들 단체 사진 작품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그 여성을 보았다면, 아마도 학생들에게 미안해했을 거다.
이종구 화백은 단원고 학생들을 작품에 담기 위해 정말이지 눈물겨운 작업을 했다. 그는 작년 여름 3개월을 해남 임하도에 가 있었다. 이제는 폐교된 우수영초등학교 분교 건물에서 혼자 먹고 자면서 그림을 그렸다. 바닷가의 이 학교에서는 세월호가 다니던 뱃길이 바로 보였다. 밤에는 뒤채는 파도소리와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가 무서웠다. 온갖 유령들이 왔다갔다 하는 통에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빨리 잠들고 싶었고, 빨리 새벽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개 반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는 데 꼬박 1주일이 걸렸다. 그렇게 꼼짝하지 않고 학생들을 그렸고, 그렇게 학생들을 달랬다. 작가는 3개월 폐교 생활을 정리하고 나오던 날이 마치 3년 군생활에서 제대하던 날 같았다고 했다. 현장에서, 고통을 감내해 가면서 완성한 작품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뿜어져 나왔던 모양이다. 순수한 관객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던 거였다.
오는 21일까지 계속될 학고재 전시회에는 총 33점이 걸렸다. 등장인물만 500명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있다. 이종구 화백은 4월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을 보고 나서 곧바로 백두산 정상을 배경으로 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판문점의 남북 분단선을 두 정상이 손을 잡고서 넘나드는 두 장의 사진을 중심으로 하고 백두산 천지와 우리의 산하를 배경으로 삼았다. 판문점 사진을 합성한 통일 염원의 작품이었다.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거였다. 그런데 그게 그만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천지에 함께 올랐다. 이번 전시회가 9월 28일 개막되었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1주일 사이에 보도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꼴이 되었다. 이종구 화백은 "상상력의 작가는 완전히 망하고, 생각지 않았던 기록화 작가가 되고 말았다"면서 웃었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