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과 주택밀집지역의 비상소화장치함(이하 비소함)에서 20년 넘은 분말 소화기가 발견됐다. 얼마 전 고양 저유소 화재의 검붉은 불길이 떠오르면서 또 한 번 안전불감증에 몸서리치게 되는 대목이다. 노후 소화기가 비소함에서 방치되고 있는데 관리주체인 119안전센터·소방서·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니 더 큰 문제다.

분말 소화기는 소방시설 중 가장 기본인 장비다. 분말소화기는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년이 지나면 교체하도록 2017년 1월 28일 법이 개정됐다. 또 '소방용품의 품질관리 등에 관한 규칙'에서는 10년이 지난 분말소화기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성능확인 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용 연한이 경과한 소화기는 성능확인검사를 받아 사용기간을 1회에 한해 3년 연장할 수 있어 최대 13년을 넘길 수 없다. 법률상 제조된 지 20년 넘은 소화기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비소함은 소화기 및 소방호스 등 각종 소화용구를 보관하는 소방안전시설물이다. 경기도에는 1천426개(2018년 4월말 기준)의 비소함이 있다. 지역별로 성남 313개, 광명 248개, 수원 133개 순이다. 인천에도 323개가 곳곳에 있다. 이번에 1998년산 소화기가 발견된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와 팔달구 지동시장 도로변 이외의 다른 비소함에도 노후 소화기가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서 발표한 '2017년 화재발생 현황 분석'에 따르면 화재 발생건수는 9천799건, 피해 규모는 인명 651명(사망 78명, 부상 573명)과 재산 2천406억원이다. 화재 발생건수는 2016년(1만147건)보다 3.4%(348건) 줄었다. 하지만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1.4%(8명), 12.4%(63명) 늘었다. 재산피해도 27.6%(520억원) 증가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 당시 감지센서도 초기 화재진화 장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시설이 불과 5개월 전 정부의 재난대응 훈련에서 우수 등급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소화기 1대가 소방차 1대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지역의 화재 진압 '골든타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방당국은 기본 장비인 소화기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모든 비소함을 전수조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