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핵심 기술은 생명줄이다. 핵심 기술로 산업생태계에서 생존하고 경쟁하며 사업자에게는 이익을, 노동자에게는 일자리를 보장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은 기업 발전의 핵심적 요소다. 그러나 제조업을 비롯한 우리 산업생태계에서 중소기업들의 핵심 기술은 보호받지 못하고 수시로 약탈당한다.

본보 관련 보도에서 소개된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 중소기업의 분쟁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업체는 LH와 공동으로 특정 과제를 진행하던 중, LH의 요구에 따라 자신들의 음식폐기물 관련 특허 기술자료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LH는 이 기술 자료를 토대로 유사 기술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 신청은 반려됐지만 LH는 이 업체에게 유사 기술 사용 대가로 수억 원을 받았다. 자신의 핵심 기술을 쓰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내야 하는 황당한 처지가 됐다. 이 중소기업의 사업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술자료를 넘겨 준 피해 중소기업을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문제의 기술은 아파트 신축에 적용되는 기술이다. 이 업체에게 국민주택 건설 공기업인 LH는 슈퍼 갑이다. 기술 자료를 공유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고, LH가 자기 기술이라며 사용료를 요구해도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분쟁을 해결하는 동안 일거리를 잃고 도산하기 십상이다.

이런 식으로 말라죽는 중소기업이 한 둘이 아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만 지난 8년간 발생한 165건의 산업기술 유출 피해 중 중소기업이 당한 것이 89%다. 또 중소벤처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부터 올해 9월 까지 '기술보호 통합 상담 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가 1만3천 건이 넘었다. 대기업은 일거리를 미끼로 약탈적 기술 공유를 강제하고, 직원들은 사익을 위해 회사기밀을 훔쳐 이직하는 바람에 중소기업의 생존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몰락은 제조업을 비롯한 우리 산업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자료 임치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중기부와 공정위의 중소기업 기술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기술 유출 시비가 벌어지면 판판이 중소기업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깨야 한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