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모 종파 신도 오모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로써 6·25전쟁 중에 의무복무제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종교적, 개인적 신념을 내세운 양심적 병역거부가 합법화 됐다.

대법원은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로 인정하면서도 병역법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남겼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은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도 제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병역법 5조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 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당시 헌재는 병역기피자 처벌 조항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즉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은 대체복무로 해소하고, 병역기피 처벌의 형평성은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의 새로운 판례대로라면 오씨는 대체복무 없이 병역을 면제받게 되고,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27건 모두 무죄가 선고된다. 다시 말해 국회와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의무 이행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입법할 때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제한없이 허용되는 것이다. 또한 이날 대법원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의 판단 기준으로 신념의 확고함을 제시했다. 앞으로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의심될 경우 검찰이 이를 밝혀야 한다는 것인데, 양심의 진위를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쟁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논쟁의 끝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강제적인 병역의무 사회에서 합법적 병역 면제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이날 김소영 주심 등 4명의 대법관이 무죄 선고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을 지적한 뒤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입법을 기다리자"며 유죄 소수의견을 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보통 청년들의 병역의무 이행에 따른 각종 인센티브가 없어진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의무가 집단화 될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일단 국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국방의무를 실현할 대체복무제를 명시한 병역법 개정을 당장 실행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가짜 양심의 범람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