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을 위한 국내 정보 수집 기능 폐지와 대공수사권 이관이다. 전자는 국정원 내부의 조직개편에 따라 이미 이루어진 상태다. 문제는 대공수사권 이관인데 자유한국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적극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면 안보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집권세력의 입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정보기관의 권한을 통제하는 방안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는 듯하다. 바른미래당이 중재안을 내고 있으나 이는 단순하게 국정원법 개정을 3년 뒤로 유예하자는 입장이다. 어차피 한국당이 반대하면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없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민주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21대 총선 이후로 개정을 미룰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 들어 국내 정보 수집기능이 사라지면서 국정원에 의존하던 국내 정보 중 상당 부분이 활용하기 어렵게 됐는데 수사기능까지 폐지하면 집권세력이 갖는 정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 여당이 소극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여당은 권력유지를 위해 야당은 미래의 집권 이후를 위해 수사권만이라도 유지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등 대공수사라는 명분으로 공권력을 남용하고 정치에 개입했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국정원 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있는 것이다.

주요 국가들의 정보기관도 국내외 정보 수집활동 이외에 별도의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권 이관은 국정원 스스로가 내놓은 개혁안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 역시 경찰이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이 수사권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

향후 여야가 법안 처리를 유예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명확한 여야 합의는 없다. 만약에 유예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이는 국회가 국정원 개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게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1일 국회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정원 개혁을 다시 강조했다. 국정원법 개정은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는 중요한 개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