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부스럼 우려속 사후조치 미흡
감정에 따라 울고, 웃을 수 없다. 눈앞 상대의 기분에 따라 기계적으로 입꼬리를 올리거나, 눈꼬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육두문자가 쏟아지고, 폭력으로도 이어진다. 이 땅에 살아가는 감정노동자들의 삶이다.
이들을 보듬겠다며 지난 10월 18일 일명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고도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그로부터 두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고객 갑질'이 이어진다. 사각지대에서 근심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삶과 이들이 진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 편집자 주
지난 10월 20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의 한 백화점에는 속옷매장 여성직원 A씨의 설움 가득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문을 잘못 이행했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폭언과 폭행은 물론, 무릎까지 꿇는 수모를 당한 뒤였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후 사건은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는 등 육체·정신적 피해를 입은 A씨는 최근까지 사건처리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자 페이스북(SNS) 등을 통해 사건을 직접 공개했다.
결과는 '로테이션(지점 이동)'을 당할 수 있다는 고용 불안 뿐이었다. 10일 매장에서 만난 A씨는 이 같은 이유로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라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다만, "고객에게 폭행을 당하고 상황이 거의 정리된 뒤에야 보안요원 등 백화점 관계자들이 왔다"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음을 분명히 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고객응대 직원이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을 경우 피해 직원이 위험장소에서 바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당일 관련 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고객응대 업무지침'을 마련하라는 규정도 사업장 대부분이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자 스스로를 억압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2년 전부터 인천 남동구의 한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은행원 A(26·여)씨는 "무례하거나 무리한 부탁을 하는 진상 고객을 만나도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내 선에서 웃어 넘기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마트노조 정민정 사무처장은 "전국 서비스업 관련 사업장 대부분이 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직원들 혼자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피해를 입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재흥·공승배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