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401001722200082771
손성배 사회부 기자
적십자가 그려진 하얀 빵모자를 쓰고 화려한 셔츠에 민망할 정도로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은 가수를 본 적이 있는가. 자칭 '민중 엔터테이너' 야마가타 트윅스터(한받)다. 그는 2009년 희대의 명곡 '돈만 아는 저질'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동숙의 노래'(문주란 1966년 데뷔곡) 중반부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를 반복하며 20세기에서 21세기형으로 전환되는데, 디스코 비트 속에 한받은 '돈만 아는 저질'을 반복하다 흐지부지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인명은 재천(在天)이라지만, 살릴 수 있었다. '돈만 아는 저질'들이 없애버린 고압산소치료 챔버를 찾아 헤매느라 허비한 그 시간과 거리가 짧았더라면 말이다.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어른들은 날이 추워지면 연탄을 땠다. 연탄가스를 먹고 눈이 안 떠져 흔들어 깨워진 뒤 싱건지(동치미) 국물 한 사발 들이켠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다. 싱건지 국물에도 정신이 안 들면 보건소로 옮겨져 산소 캡슐에 들어가서 살아남은 어른들을 말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1970~80년대 국가 정책에 따라 300여 의료기관에 고압산소치료 챔버가 설치됐다. 보통 보건소에 뒀는데, 여건이 안 되면 중소병원에 위탁해 운영했다. 난방 연료가 연탄에서 석유, 도시가스로 진화했다. 자연히 가스 중독 응급환자는 사라졌고 고압산소치료 챔버는 도태됐다. 돈이 안 됐기 때문이다. 가스 중독 사고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원골든프라자와 같은 다중이용시설 화재 현장과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뿐 아니라 밀폐된 지하 공사현장, 최첨단 반도체 공장 등 곳곳에 가스 중독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21세기 소녀·소년들이 기댈 곳은 이제 싱건지 국물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고압산소치료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요양(의료)기관은 2015년 전국 111곳에서 2018년 9월 159곳으로 늘었다. 보유 의료기관이 늘어났지만, 24시간 고압산소치료 챔버 전문인력이 상주하는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뒤늦게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과 의정부병원에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살려야 한다. 1인용은 2억원, 6인용은 6억원, 10인용은 10억원이다.

/손성배 사회부 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