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도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집단갈등 표출의 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인천광역시가 의욕적으로 개설한 온라인 시민청원 얘기다. 시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온라인 시민청원 창구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앞서 지난해 8월 개설된 청와대 국민청원을 참고했다. '인천은 소통e가득'이란 이름으로 개설된 이 온라인 시민청원 창구를 통해 시민들은 주요 정책이나 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다. 등록된 청원이 3천명 이상의 시민 동의를 얻은 경우엔 시장이나 고위 간부가 영상을 통해 답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요건을 갖춘 '제1호 청원'이 청라와 송도국제도시 주민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이다.

온라인 시민청원 창구가 개설되자마자 청라국제도시 주민으로 짐작되는 한 시민이 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하 경제청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을 냈다. 이 청원은 지난 달 27일 3천명 이상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냈다. 경제청장이 사퇴해야 할 8개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청라국제도시 내 G시티 사업에 대한 경제청의 부정적 입장이 핵심이다. 이 사업과 관련해 경제청은 당초 계획에 없던 인구 유입과 그에 따른 기반시설 부족, 투자유치 없는 부동산 '먹튀' 우려 때문에 특정 부동산개발업체의 사업 추진에 대해 난색을 표명해왔다. 그러자 일부 청라 주민들이 송도국제도시 개발을 우선시하는 경제청의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온라인 카페를 통해 경제청장 사퇴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청원이 청라와 송도국제도시 주민들 간 갈등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도 주민들은 청라 주민들의 경제청장 사퇴 청원에 크게 반발하면서 경제청장 퇴진을 막는 '역청원'을 냈다. 송도의 여러 온라인 카페에는 청라 주민의 청원을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온라인 시민청원 제도 도입을 검토할 때부터 우려됐던 일이다. 제도의 선한 목적과는 달리 온라인에서 집단동원 능력을 가진 지역주민들만이 뛰어들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게 현실화된 것이다. 벤치마킹했던 청와대 온라인 국민청원 사이트도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청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좋은 제도의 역기능을 막기 위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