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마을 물류단지
인허가 절차가 총량제에서 실수요 검증제로 전환되면서 경기지역에 물류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서 지역주민들이 교통난과 생존권 등의 이유로 집단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광주 오포읍 문형리 산64의18 일원 20만여㎡ 규모로 조성 중인 광주 오포물류단지 현장.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택배량 늘자 '실수요 검증제' 시행
민간위원, 사업자 제출 계획 평가
道·지자체, 결정과정에 참여 못해
주민 반대해도 '거부 현실적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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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로 쏟아지는 물류단지 문제(1월 15일자 1면 보도)의 근간에는 입점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당사자인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할 수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내재돼 있다.

15일 국토교통부와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물류단지 실수요검증제도'가 시행되면서 물류단지 입지 결정 권한이 전적으로 사업 시행자에게 주어지게 됐다.

2014년 전까지는 정부가 일정 지역에 지을 수 있는 물류단지의 면적을 제한하는 총량제가 시행됐다.

이후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택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물류단지를 적기에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물류단지 총량제는 폐지되고 실수요 검증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실수요 검증제는 사업자가 제시한 사업의 필요성·타당성 및 사업 실현 가능성을 정부가 검토해 승인을 내주는 제도다.

민간 검증위원이 사업자가 제출한 계획을 평가해 물류단지 입점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는 별다른 절차는 없다.

이같이 지역을 '패싱'하는 현행 제도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토부는 "실수요검증을 통과했더라도 시·도지사는 주민 의견 청취, 교통·환경영향평가, 물류단지계획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통해 물류단지 지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수요 검증을 통과했더라도 경기도가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물류단지계획심의위원회가 민간 위원으로만 구성돼 있어 경기도와 해당 지자체는 의견만 제시할 수 있을 뿐 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민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물류단지 지정 거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수요가 있느냐와 사업자에게 재정 능력이 있느냐 하는 두 가지 잣대만을 가지고 물류단지 입점을 결정하다 보니 지역의 반발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물류단지에 대한 주민 반발이 심한 광주 퇴촌 물류단지 역시 지난해 실수요 검증 통과 이후 정부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물류단지가 들어서더라도 고속도로나 고속화 도로에 인접해 입점하면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실수요 검증 제도 안에선 사업자가 입지를 선정하고 사업 계획을 제출하기 때문에 입지 자체가 사업자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광주 역시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 주위로 2개의 대형 물류단지가 들어서며 주민들의 반대가 시작된 경우다. 이 때문에 지자체가 처음부터 입지가 결정되는 실수요 검증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갈등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내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이 원하는 경우에 한해, 교통이 원활한 장소에 물류단지가 들어서야지 사업자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다 보니 문제가 커졌다. 온라인 상거래 증가로 물류단지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사업성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희·신지영·배재흥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