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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적막한 모습의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결정이 또 미뤄졌다. 민주노총은 전날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에서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어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연합뉴스

'촛불 혁명'의 한 축을 이끌며 문재인 정부 출범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정부의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가 또 무산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사회적 대화의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에서 개최한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의원들의 불신이 여과 없이 표출됐다.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제출한 경사노위 참여 안건에 대해 일부 대의원들은 정부의 잇단 '우(右) 클릭' 행보를 거론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이들이 주목한 정부의 '친(親)기업' 조치는 크게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기준에 못 미치는 노동관계법 개정 등 3가지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양대 '노동존중사회' 정책인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조치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논의 결과를 반영해 노동관계법 개정을 할 방침이지만, 노동계는 '개악' 수준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는 정부의 이 3가지 움직임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가 이미 친기업으로 돌아섰다며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개악' 작업의 거수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사노위 참여에 거부감을 가진 대의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경사노위 참여 안건은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지난해 10월 임시 대의원대회에 이어 이번 정기 대의원대회에서도 무산됨에 따라 경사노위가 '완전체'를 이루는 것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정부가 바로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에 착수한다는 점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과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에 관한 경사노위 의제별 위원회 논의는 설 연휴 직후 마무리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위원회가 내놓은 논의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에 나선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방안은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초안을 토대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곧 확정할 예정이다.

이 또한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가 내건 3가지 문제가 현실화하는 것으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위한 문턱이 그만큼 더 높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대의원의 거부감을 다시 확인한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을 저지하기 위한 대정부 투쟁에 나서는 양상이다.

김명환 위원장도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 표결이 무산된 직후 "당면한 2월 국회에 대비한 총파업 총력 투쟁 준비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이 대정부 투쟁을 벌이고 정부가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민주노총과 정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에 주목하며 사회적 대화 중단을 거론하고 있다.

앞서 한국노총은 지난 25일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사용자 추천 공익위원 2명이 경영계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관련 권고 초안을 내놓은 데 반발하며 퇴장했다.

이어 28일에는 상임 집행위원회를 열어 경사노위에 사회적 대화 중단 가능성을 경고하는 의미로 오는 31일 예정된 노사관계 개선위원회 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이상훈기자 sh2018@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