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어제 핵심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기면서 일단락됐다. 검찰은 8개월여간 이어진 수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들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핵심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3번째 추가기소됐다.

검찰이 지난 해 11월 차한성 전 대법관을 소환 조사하면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으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이 청구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됨으로써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형사재판을 받는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 기록됐다.

2017년 2월 이탄희 당시 판사가 법원 내 블랙리스트 존재를 알리며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 사법농단 파동은 시작 2년만에 전직 사법부 수장의 기소라는 큰 분수령을 맞았다. 전 사법부 수뇌부의 사법처리가 마무리되면서 사법농단 의혹의 유무죄와 단죄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재직한 사법부의 몫으로 남겨졌다. 검찰은 법관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마친 뒤 다음 달쯤 양승태 사법부에 재판청탁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기소여부도 확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자신이나 지인 재판 청탁을 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유동수 의원,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 민주당의 전병헌 전 의원 등에 대한 처벌 여부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는 비록 선출 권력이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와 사법농단 의혹은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잃은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는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사법부의 위상과 권위를 찾을 수 없다. 정치의 사법화와 더불어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의 독립과 중립성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은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가 어우러진 최악의 결과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헌법유린이다. 사법농단 범죄 기소를 계기로 법원은 물론 국회도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하여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