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주장 바꾸려 들기보다 이해해줘야
다툰 이유는 잊어도 섭섭한 감정 오래 기억
혈관성·루이소체 등 유형에 맞는 치료 필요
경도인지장애와 초기엔 '인지재활' 효과적
옛 기억은 또렷한데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오전에 있었던 일을 오후에 잊고 어제 일도 까맣게 몰라 기억해내지 못해 낭패를 겪는다.
물건이나 돈을 어디 뒀는지 잊고 심지어 자녀나 며느리가 훔쳤다고 의심하는 일도 생긴다.
조리 중 가스레인지 불을 끄는 것을 잊는 경우도 다반사, 장을 보러 가서는 한두 가지는 꼭 빼먹고 온다.
약속을 잊고 결혼식, 생신, 기일과 같은 집안 중요 대소사도 잊어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정확한 단어 대신 '그것', '저것' 등 대명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진다. 치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이 같은 기억력 감퇴는 치매 초기 나타나는 가장 흔한 증상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겪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됐다.
올해 기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769만3천721명 가운데, 추정치매환자 수는 79만1천228명이다.
연병길 인천시광역치매센터장(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을 경우 어떤 치매인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치매 종류에 따라 초기 증상을 살펴보면, '혈관성 치매'는 보행장애, 말을 못하는 구음장애, 두통, 현기증 등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한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거나 반대로 감정이 무뎌지는 등 성격 변화가 기억력 저하보다 먼저 나타나는 초기 증상을 보인다.
'루이소체 치매' 초기에는 장시간 허공을 멍하게 응시하거나 반복적으로 의식을 잃고 졸도하며 잠을 자다가 악몽을 꾸듯 소리치며 웃고 말하고 발길질, 주먹질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치매 유형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혈관성 치매는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혈관성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 질환이 있는데, 이 질환을 조절하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우울증은 항우울제의 복용과 정신치료로 완쾌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항치매 약물 복용으로 병의 경과를 지연시킨다.
약물치료 외에도 인지재활치료, 원예치료, 미술치료 등 비약물학적 보조 치료도 필요하다. 특히 인지재활치료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나 치매 초기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많다.
치매안심센터와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다양한 인지향상프로그램을 운영해 초기치매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의학적 치료와 별개로 무엇보다 초기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은 치매 어르신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연 교수는 각 광역자치단체에 설치된 광역치매센터와 치매안심센터가 운영하는 가족교육프로그램과 자조 모임 참여를 권했다.
연병길 교수는 "가족들은 치매 어르신을 나무라거나 어르신이 잘못 알고 주장하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는데, 어르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치매 환자는 다툰 이유는 금방 잊지만, 그때 섭섭한 감정은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