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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전시컨벤션 산업위크' 행사를 찾은 한 취업준비생이 상담에 앞서 전시-컨벤션 업체들의 채용공고를 살펴보던 중 휴대전화로 공고문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취업준비생들은 자기소개서와 적성검사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인턴 한번 하려고 기를 쓰는데 채용비리 소식을 들으니 그동안 한 노력이 모두 부정당한 기분이에요."

정부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 결과 총 182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되자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대학교 4학년 이모(26)씨는 21일 큰 허탈감을 드러냈다.

정부는 1천205개 기관을 대상으로 2017년 10월 특별점검 이후 실시한 신규 채용과 최근 5년간(2014년 1월~지난해 10월) 이뤄진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 발표를 접한 취업준비생들은 분노를 넘어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이씨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공정한 절차 없이 연줄 하나로만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사회라는 불신이 생겼다"며 "단순 퇴출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취업제한, 형사 고발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업준비생 최모(27)씨는 "과거부터 계속해서 (채용비리를) 듣다 보니 근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이제 화도 안 난다"며 "어차피 세상은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체념했다.

윤모(24·여)씨는 "공기업은 이른바 '꿈의 기업'이라 불리고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 정도로 입사를 원하는 곳"이라며 "그런 곳에서 채용비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박탈감이 크다"고 분개했다.

그는 "공공기관은 나이나 학벌 등 조건이 좋지 않은 취준생들이 블라인드 전형에서 자기 실력만 믿고 노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청년들에게 더 큰 무력감을 주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강모(26)씨는 "최근에 여러 번 보도된 사기업 채용비리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는데, 문재인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을 하겠다고 공언한 공공기관마저 이런 소식이 들리니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강씨는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취업준비생들이 갖는 마지막 희망인데, 그것마저 없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전했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업준비를 하는 허모(26)씨는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채용비리 뉴스를 보다 보면 '내가 떨어진 게 혹시 연줄이 없어서인가' 하는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안모(26)씨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며 "고위층들이 자기 자녀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문화가 지금도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달 말 계약 기간이 끝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국내 한 국립대의 단기 계약직 노동자 이모(32)씨도 공공기관 채용비리 내용에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씨는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하다 보니 30대가 돼서도 끊임없이 취업을 준비한다. 고용이 보장되고 근무 환경이 좋은 공공기관에 취업을 도전하는 일이 당연히 1순위"라며 "그런데 공공기관에 채용비리가 만연하다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공기관이 이런 식이라면 사기업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 같고, 노력만으로 좋은 곳에 취업하지 못할 것 같아 미래를 향한 불안과 절망이 커진다"면서 "제발 채용비리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표로 상처받은 이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최근 한 공공기관에 입사한 직장인 손모(26)씨는 "주변으로부터 괜한 의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애사심도 없어지는 것 같다"며 채용 비리가 만연한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