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북미회담 결렬의 원인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발표하면서 사실관계가 주목되고 있다.
북미 모두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의 결렬 배경이 '제재해제'와 '영변 핵시설 폐기 + α'를 둘러싼 입장차에 있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우선 북한이 요구한 '제재해제'의 범위다.
리용호 외무상은 1일 새벽 하노이 숙소에서 가진 심야 회견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해제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일 북한이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혀 이를 반박했다.
하지만 양측이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표현만 달랐을 뿐 내용상으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민수용'에 한해 해제를 요구했다지만, 제재의 상당 부분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유류와 외화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는 결국 '민수경제와 인민생활'과 연결지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민수용에 한정한 제재해제' 요구가 사실상 '전면적인 제재해제'로 받아들여 졌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리용호 외무상이 밝힌 '일부 민수경제 및 인민생활 관련 제재'의 해제 요구는 사실상 전면 해제 요구와 다름없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 범위가 실무협상 단계부터 2월 28일의 최종일 협상까지 가는 과정에서 변화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전면 해제냐 부분 해제냐 논란인데, 양쪽 다 맞다고 본다"며 "북한은 처음에는 영변 핵단지 영구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전면적 제재 해제를 주장했을 것인데,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에서 거론한 '일부 해제'는 최초안에서 한발 양보한, 북측의 마지막 제안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북한이 제재해제의 대가로 취하겠다고 제안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 범위가 어디까지냐도 논란이다.
우선 북한 외무성의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말부터 다소 다르다.
리 외무상은 1일 회견에서 "우리는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라고 말해 폐기 대상을 '영변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로 한정했다.
그러나 회견장에 배석한 최선희 부상은 "우리는 영변 핵단지 전체,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플루토늄 시설, 모든 우라늄 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을 통째로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변 핵단지가 5MW 원자로와 핵연료봉 공장, 재처리시설 등이 몰려있는 '핵물질 생산단지'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표현을 같은 취지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변 핵시설 중에는 핵 연구소나 핵폐기물 저장소 등 엄밀하게 따지면 핵물질을 생산하는 시설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건물들도 있어 다르게 볼 소지도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도 북한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듯한 언급을 내놓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북한이 영변 핵시설과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 분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