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성 A씨는 지난 2015년 8월 20일 자택 방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1급 장해진단을 받고 치료 중 숨을 거뒀다. 이 사고에 앞서 지난 1996년 국내의 한 생명보험회사에서 1급 장해 진단 시 5천만 원을 지급받는 보험에 가입했던 A씨. A씨의 상속인은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의 사고였으니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은 A씨의 보험회사에 재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고인의 극단적 선택 여부를 입증할 책임은 보험회사에 있는데,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사가 재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의 상속인의 요청에 따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A씨는 사고 하루 전 날 직장 동료와 평소와 다름 없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사고 발생 20일 전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았다. 사고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도 않아 그의 죽음의 고의성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이밖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주목한 사실은 ▲ 연소물이 A씨가 발견된 방이 아닌 다용도실에서 나온 점 ▲ 연소물의 종류를 번개탄으로 단정하기 어려움 점 등을 고려해 A씨의 고의 사고 여부를 보험회사가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2001년 대법원에서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자살을 입증하기 위하여는 자살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 유서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벅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정황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고 한 판례를 인용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번 조정 결정은 '보험사가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입증 책임을 부담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재확인했다"며 "그동안 막연히 고의 사고를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보험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조서 내용은 재판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고, 조정 성립 이후 결정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강제 집행이 가능하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