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주총 부결' 대표직 박탈 당해
2대 주주 국민연금 반대 의결권 결정타… 주주에 밀려난 첫 재벌 총수

1945년 인천의 작은 가게에서 출발한 한진그룹의 총수 조양호(70) 회장이 27일 주총에서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 사내이사직(대표이사)을 박탈당하면서 74년 만에 한진가(家)의 '오너 경영' 체제가 막을 내렸다.

창업주인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한진그룹을 이끌었던 조양호 회장은 주주들에 의해 밀려난 첫 재벌 총수가 됐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64.09%, 반대 35.91%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상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조 회장은 2.5% 남짓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1999년 아버지 조중훈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경영권을 물려받은 지 20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기업 총수가 주주권 행사로 인해 경영권을 빼앗긴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11.56%)의 반대 의결권 행사가 결정타였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는 전날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히며 조 회장의 연임 불발을 예고한 바 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연임 반대 권고도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가 조 회장에게 등을 돌리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조양호 회장은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로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이나 물컵 갑질 사건, 막말 사건 등 한진가(家)는 잇따른 일탈행위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한진은 1945년 11월 1일 인천시 해안동에서 '한진상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육·해·공을 넘나드는 우리나라 대표 물류 회사로 성장했다.

창업주 조중훈 회장은 해방 후 미군정 아래서 인천항의 화물을 내륙으로 운송하는 화물운송업을 시작했고, 1957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물자 조달업체로서 전쟁특수를 누려 한진그룹으로 성장했고, 1969년 공기업이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민영항공사 대한항공을 창립했다.

올해는 대한항공 50주년이 되는 해다. 인천의 대표 대학인 인하대학교와 인하공업전문대학이 한진그룹 내의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 소속이기도 하다.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직 박탈로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 중심의 오너 경영 체제는 막을 내렸고, 대한항공은 공동 대표이사인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 사장과 우기홍 부사장 2인 체제로 경영을 꾸려나갈 방침이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