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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배 사회부 기자
오멜라스. 어슐러 K 르귄이 쓴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가상의 유토피아다. 르귄은 '적자생존' 정글과 같은 세상과 딴판인 세상을 글로 그리며 단 하나의 비극적인 장치를 심었다. 오물로 가득 찬 지하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어린아이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기 전 이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동시에 이 아이가 비참한 삶을 사는 덕분에 자신들과 공동체의 행복이 보전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문제를 마음 한 구석에 묻고 행복하게 살 텐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오멜라스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화재 현장에 가면 소방관들은 얼굴에 검댕이를 잔뜩 묻히고 등에는 'SANCHEONG'이라고 쓰인 공기통을 멘 채 잰걸음으로 움직인다. 그 공기호흡기에 미인증 밸브가 결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더해 정부 지원을 받은 개발 기술에 문제가 불거진 방위사업과 판박이로 자사 기존 특허를 심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관납 시장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업체가 수십년간 쥐락펴락하는 독식 구조였다. 경인일보는 지난 2월 26일 (주)한컴산청이 납품한 소방관용 공기호흡기에 미인증 밸브가 결합됐다는 첫 보도 이후 한 달여 납품업체, 소방당국, 수상한 검사기관 등 업계에 만연한 문제점을 짚었다. 지속적인 보도가 이뤄지자 소방청과 소방산업기술원은 제조업체 3사를 불러 모아 공기호흡기 검사·규격 개정안을 논의했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문제를 그대로 두고 그들만의 오멜라스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실의 아이 같은 숨겨진 구조적 병폐를 꺼내 새 판을 짤 것인가. 현장 소방관들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간다면 당근색 옷을 입은 소방관을 존경하는 아이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손성배 사회부 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