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법안 등 개혁법안의 세부 내용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처리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선거법 개정과 개혁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이 합의됨에 따라 한국당의 반발로 4월 임시국회의 파행은 물론 정국 긴장은 최고조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강행에 자유한국당은 14년 만에 장외투쟁에서 맞서는 등 여야 대치가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은 내년 총선과도 맞물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한국당은 이미 패스트트랙을 4월 국회뿐만 아니라 20대 국회 전체를 마비시키는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면서 총력 투쟁을 경고한 바 있다. 각 정당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별 대치와 공조가 반복되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색되고 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미선 재판관 임명 반대에서는 한 목소리로 여당에 각을 세웠으나 패스트트랙에서는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처리에 합의했어도 각 당의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바른미래당의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선거법 개정에 부정적이다. 일부 국민의당계 의원들도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당내 합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야 4당의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각 당의 의총에서도 추인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의 공세 수위가 최고조에 달할지라도 패스트트랙이 현실화되면 여야 4당과 무소속의 의석수로 볼 때 한국당이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를 명분으로 극한적 투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내년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20대 국회도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20대 국회 역시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 여야 대치를 풀고 민생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청와대·여당은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물어 정국 정상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한국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일관할 게 아니라 여당과 다른 야당과 협상하고 타협하는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총선이 민생을 위한 선거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한 요식행위가 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