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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흥 사회부 기자
내 기억 속 열여섯의 나는 굉장히 불안했던 것 같다.

2006년쯤만 해도 내가 살던 곳은 여전히 고교평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인문계고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곧잘 해야 했다.

관내 인문계고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좋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도 있었다. 물론, '왜'는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대학', '대학'을 외치니까 나도 모르게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을 타고 순항하는 요트 마냥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면서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열여섯부터 그렇게 10년. 나의 진로는 이 시간 안에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졌다.

요즘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삶을 대하는 '진중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열여섯 나이에 이미 대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다. 반드시 대학을 가지 못할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꾸준히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받을 수 있는 중학교 내신성적 190점 이상(200점 만점) 학생들도 특성화고를 포함한 직업계고에 가는 시대다.

그러나 특성화고 학생들이 졸업 후 마주하는 건 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견고한 '고졸'의 장벽이다. 비정규직 신세, 전공과 무관한 직무, 무시와 차별, 승진 배제 등은 졸업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처절한 현실이다.

어쩌면 어린 학생들의 '성숙함'이 특성화고가 운영되는 가장 큰 동력일지도 모른다. 특성화고를 통해 고졸취업을 확대하겠다던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성숙함이 좌절감으로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다.

졸업생들은 열여섯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다시 특성화고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짝사랑이 너무 슬플 것만 같다.

/배재흥 사회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