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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당직자들이 떨어진 현수막을 바로 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4당이 함께 추진해온 선거제 개혁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이 23일 패스트트랙에 사실상 올랐다.

전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합의안을 마련한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이날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고 합의안을 추인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거세고, 소관 상임위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도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돼 본회의 통과까지는 '첩첩산중'이라는 전망이다.

◇ '첫 관문' 정개특위·사개특위부터 험로 예고

패스트트랙의 공식 출발점은 조만간 있을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전체회의가 될 전망이다.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전체 재적위원(18명)의 5분의 3 이상(11명 이상)이 동의하면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에 오른다.

정개특위 위원 중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한 여야 4당 소속 의원이 5분의 3을 넘는 12명인 만큼 이렇다 할 변수가 없는 한 패스트트랙 안건은 가결될 전망이다. 정개특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은 6명이다.

바른미래당이 당론이 아닌 '최종 입장'이라는 형식으로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했지만, 정개특위 소속인 김동철·김성식 의원이 '패스트트랙 찬성' 입장인 만큼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개특위의 상황은 다르다.

사개특위의 정원은 18명으로, 이상민 위원장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8명, 한국당 의원 7명, 바른미래당 의원 2명, 민주평화당 의원 1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개특위와 마찬가지로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려면 11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관심은 바른미래당 소속 사개특위 위원인 오신환·권은희 의원에게 쏠려 있다. 당초 이들 의원이 공수처 합의안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고, 심지어 오 의원은 바른정당 출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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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도부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만약 이들 의원 중의 한 명이라도 공수처 법안에 반대하면 찬성 10표, 반대 8표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부결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이들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빼고 다른 의원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날 의총에서 김 원내대표가 이들 의원을 빼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의총 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패스트트랙 통과 여부는 사개특위 위원인 오신환·권은희 의원에 위임됐다. 패스트트랙 통과 여부는 두 의원 입장에 달렸다"며 "두 위원 사보임은 절대 없다. 
사개특위 두 위원을 바꾸지 않기로 김 원내대표가 약속했다"고 밝혔다.

공수처 설치는 정부·여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국정 과제라는 점에서 공수처 설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이 무산된다면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지정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 "목숨 걸고 총력 투쟁"…장외투쟁 각오한 한국당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에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야 합의로 '게임의 룰'인 선거제 개편을 해왔던 기존 관행을 여야 4당이 일방적으로 깨뜨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추진을 '좌파독재플랜'으로 규정,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권은 10명도 안 되는 당도 당으로 인정하는데 100명이 넘는 제1야당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을 밀어붙이면 우리 당은 국회에 더이상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주말인 오는 27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두 번째 장외집회도 검토 중이다.

한국당의 반발로 국회가 멈춘다면 당장 오는 25일 정부가 제출할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탄력근로제·최저임금 개편안 등 산적한 민생 현안 논의도 '올스톱'될 가능성이 크다.

제1야당이 국회를 뛰쳐 나갈 경우 각종 입법을 통해 문재인 정부 중반기 개혁 드라이브를 뒷받침해야 하는 민주당으로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이날 "한국당을 설득해서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여야가 원만하게 타협해 처리하도록 하고, 그를 위해 민주당이 가장 많은 노력을 하겠다"며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선거제·개혁 법안 패스트트랙의 출발은 앞으로 1년간 펼쳐질 치열한 총선 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에 불과해 여야, 특히 민주당과 한국당의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4월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여야는 "개혁 의지가 없는 한국당은 장외에 드러눕기를 멈추라"(민주당 신동근 의원), "여당이 어렵사리 연 국회를 팽개치고 밥그릇 싸움만 한다"(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며 '네 탓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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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좌파독재 저지, 공수처 반대 등 현안 관련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180일·90일·60일…고비마다 '파열음' 예상

패스트트랙 법안은 최장 330일 동안 숙려 후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표결 처리를 거친다. 구체적으로 관련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심사 뒤 본회의 부의 기간 60일 등이 걸린다.

상임위별 안건 조정제도와 국회의장 재량 등 적용을 고려해도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기까지는 240∼270일이 소요될 예정이다.

다만 여야가 합의하면 이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상임위에서 안건조정제도를 통해 90일, 본회의 부의 기간을 60일 줄이면 계산상으로는 180일 만에도 처리가 가능하다.

이 경우 내년 총선 전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혁의 입법화가 가능하다.

첫 번째 관문인 국회 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법사위로 패스트트랙 법안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가 우선 관심사다.

상임위 내 의결정족수로 따지면 한국당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만, 관련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이 '총력저지'를 각오한 만큼 '원활한 표결 처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있다.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의총에서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정당에서 내리꽂는 제도를 지지하겠나, 직접 뽑는 선거제도를 지지하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정개특위 간사로서 선거제 개편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 '당신의 지역구는 무사하십니까'…본희의서 이탈표 '촉각'

패스트트랙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 표결까지 올라온다 해도 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정치권 일각의 전망도 있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의 골자는 연동률 50%를 적용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현행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중앙선관위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여야 4당의 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지역구 의석을 225석으로 줄일 경우 현행 253개 선거구 중 모두 26개가 인구 하한 기준선에 미달하고, 2개가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에 따라 내년 21대 총선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분구나 통폐합이 되는 선거구가 최소 28개는 된다는 뜻이다. 분구·통폐합 지역구의 인근 지역구들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지역구 변동이 생기는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본회의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수 있다. 즉 범여권 내에서도 이탈표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본회의에 패스트트랙 법안이 올라간다 해도 지역구 조정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른미래당에서 8석, 민주평화당 4∼5석, 무소속 2∼3석 등 반대표가 나올 것으로 본다"며 "민주당에서 반란표가 17∼18석 나온다면 본회의 부결이기 때문에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정된 선거법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르기 전 선거구 획정부터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