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문신이 남긴 문집에서 400년 전쯤 한문으로 쓴 홍길동전이 발견돼 화제다.
이와 함께 이윤석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글 홍길동전은 허균이 아닌 18세기 후반에 알 수 없는 어떤 작가가 창작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를 펴낸 이 전 교수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한문 홍길동전 이름은 '노혁전(盧革傳)'이다. 노혁전의 작자는 지소 황일호(1588~1641)로 이 작품은 '지소선생문집'에 수록됐다.
지소선생문집은 황일호의 후손이 1937년에 간행했다.
노혁전은 황일호가 전주 판관으로 일하던 1626년 전라감사 종사관 임게에게 이야기를 듣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일호는 노혁전 앞부분에서 "노혁의 본래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니 실로 우리나라 망족(望族 명망있는 집안)이다. 불기(不羈 구속을 받지 않음)의 재주를 품었으며, 글에 능했다"고 노혁이 홍길동임을 분명히 했다.
노혁전에서 홍길동은 낮에는 지체 높은 사람과 어울리고 밤에는 도적질을 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서울을 떠나 떠돌아 다니며 보화를 훔쳤다. 조정에서는 상금을 걸고 홍길동을 추적했으나 잡지 못했다.
40년간 도둑들을 이끈 홍길동은 "대장부가 변화를 당해서는 매미가 껍질을 벗는 것 같아야 하니, 나는 마땅히 지금부터 새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무리를 해산했다.
이어 관서 지방 관찰사 홍진동에게 가서 몸을 의탁했고,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많이 낳고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노혁전은 여러 면에서 한글 홍길동전과 상당히 유사하며, 이 전 교수는 "노혁전은 전의 형식을 갖췄지만, 내용상으로 야담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사실 허구가 섞여 있다. 당시에 전하는 홍길동 관련 이야기를 모두 모았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글 홍길동전에 잘못 알려진 부분도 많다면서 "한글 홍길동전은 세상에 전하는 홍길동 이야기를 바탕으로 1800년 무렵 알 수 없는 어떤 작가가 창작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허균(1569~1618)이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
이 전 교수는 한글 홍길동전에 대한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는 설명도 내놨다. 그는 "한글 홍길동전은 세상에 전하는 홍길동 이야기를 바탕으로 1800년 무렵 알 수 없는 어떤 작가가 창작했다고 봐야 한다"며 허균(1569∼1618)이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통념을 반박했다.
홍길동은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며, 연산군 6년(1500) 10월 22일 정승들은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를 다 잡도록 하소서"라고 했다.
이후에도 실록에는 선조 21년(1588)까지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이 전 교수는 "실록은 일관되게 홍길동이 도적이라고 하는데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상당히 큰 도적떼의 우두머리였다"면서 "무인으로 공을 세워 당상관이 된 관료 염귀손과 친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상당히 오랜 기간 홍길동이 도둑의 대명사로 쓰였지만, 1588년 무렵이 되면 사람들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간 듯하다"면서 홍길동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이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허균이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설의 근거가 이식(1584~1647)이 쓴 택당집에 등장하는 허균은 수호전을 본떠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문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글 홍길동전에 허균이 생존하지 않았던 시기인 숙종(재위 1661~1720) 때도 도둑 장길산이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반박했다.
이 전 교수는 "한글소설 홍길동전에는 허균의 사상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 거의 없다"면서 허균의 홍길동전과 현대인이 읽는 한글소설 홍길동전이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이 전 교수는 한문 홍길동전을 내달 3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하는 '한국 고전 정전의 재인식: 우리가 몰랐던 홍길동전' 학술대회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손원태 기자 wt2564@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