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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는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무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연구 보고서를 확보하고도 제품을 출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간 애경은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메이트를 넘겨받아 단순히 판매만 했을 뿐 원료물질 성분이 유해한지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제품 출시 이전에 이미 원료 성분의 유해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재수사하는 검찰은 애경이 '가습기 메이트'가 출시된 2002년 9월 이전에 SK케미칼로부터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 보고서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당시인 1994년 10∼12월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를 담고 있다.

당시 연구팀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인해 (실험용 쥐의)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유공은 추가 연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1월 가습기 메이트를 시장에 내놓았다.

유공의 가습기 살균제 사업 부문을 인수한 SK케미칼은 이 보고서를 통해 인체 유해 가능성을 인지했으면서도 그대로 제품을 판매한 혐의로 애경과 함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SK는 2000년까지 동산C&G를 통해 가습기 메이트를 판매하다가 동산이 부도나자 2001년 애경과 판매 계약을 맺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선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자 SK가 태스크포스를 꾸려 서울대 실험보고서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이 드러났다.

애경 역시 이 보고서를 갖고 있었으나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조직적으로 인멸한 정황이 확보됐다.

검찰은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의 유해 가능성을 알고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표시·광고하면서 판매한 행위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의 주요 근거로 보고 있다. 실험에 문제가 없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애경은 가습기 메이트의 정확한 권장 사용량 또는 과다한 사용량으로 원료물질 농도가 짙어지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주의 문구를 2011년 제품 판매를 종료할 때까지 라벨에 표기하지 않았다.

애경 측은 "SK케미칼에서 영업비밀이라며 원료물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았기에 유해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며 "판매자가 지는 주의의무는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법원은 지난달 30일 안용찬(60)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그 사유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 유형에 따른 독성 및 위해성 차이, 그로 인한 형사책임 유무 및 정도에 관한 다툼 여지'를 들어 주목된다.

가습기 메이트 원료인 CMIT·MIT가 유해한지 아닌지를 두고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옥시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사용한 원료인 PHMG·PGH는 2011년 11월 일찌감치 '폐 섬유화 유발' 등 유해성이 인정돼 이 원료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이들이 처벌받았다. 그러나 CMIT·MIT는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SK·애경·이마트 등이 처벌을 피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CMIT·MIT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유해성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는데, 법정에서 다시 가습기 메이트 사용과 인체 피해의 인과관계를 세밀하게 입증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2011년 4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불거진 이후 8년이 지났으나, 사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