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국제공항 터미널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는 베트남인 여성이 3일 풀려나면서, 김정남 암살 사건은 발생 2년여 만에 영구미제 사건 파일 속에 갇히게 됐다.
이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 전원이 자유의 몸이 된 만큼 암살을 지시한 배후의 실체는 물론 여태 풀리지 않았던 많은 의문에 대한 해답도 사실상 찾을 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김정남, 백주에 국제공항서 화학무기에 피살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들어선 김정남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여)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31·여)에게 앞뒤로 둘러싸였다.
시티가 김정남에게 말을 건 뒤 그를 향해 팔을 뻗었고, 흐엉은 그 틈을 타 뒤에서 손을 뻗어 김정남의 얼굴에 맹독성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바른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봉변'을 당한 김정남은 근처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문의한 뒤 공항 경찰을 만나 "두 여성이 얼굴에 뭔가를 발랐다"고 밝히고 함께 공항 내 진료소로 이동했으나 걸음걸이가 흐트러지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발작을 일으켰다.
의료진은 약 한 시간 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김정남을 시내 대형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으나, 김정남은 이송 도중 완전히 숨이 멎었다.
말레이시아 화학청 산하 화학무기 분석센터의 라자 수브라마니암 소장은 김정남의 안구와 혈장에서 순수한 VX가 확인됐다면서 얼굴 피부에서 검출된 VX의 농도가 체중 1㎏당 0.2㎎ 수준으로 치사량의 1.4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조기에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말레이 경찰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김정남의 여권에 기재된 국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을 한국으로 착각해 현지 주재 한국대사관에 김정남의 사망을 알렸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당시 이름이 '김철'로 기재된 북한 외교 여권을 갖고 있었다. 한국대사관 측은 김철이 김정남의 가명 중 하나란 사실을 알렸고, 말레이 경찰은 즉각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해 달라는 북한대사관의 요청도 거부했다.
현지에선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김정남의 죽음은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던 북한 국적 외교관이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간주해 그대로 묻혔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김정남 암살 연루 혐의자 전원 도주·석방
당시 경찰은 최소 8명의 북한인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밝혔지만, 이중 체포된 인물은 약학과 화학 전문가로 알려진 리정철(48)뿐이다.
시티와 흐엉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게 한 것으로 조사된 리재남(59), 리지현(35), 홍송학(36), 오종길(57)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한 뒤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 등을 경유해 평양으로 돌아갔다.
주범 격 인물을 놓친 경찰은 리정철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도주한 북한인들에게 차량을 제공하는 등 정황 외에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말레이 당국은 현지 건강식품업체에 위장 취업한 고정간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리정철을 국외로 추방하는 데 그쳤다.
현지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6)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9), 시티를 섭외하고 예행연습을 시킨 북한인 리지우(일명 제임스·32) 등 다른 연루자들도 치외법권인 대사관 내에 숨는 바람에 조사를 하지 못하다가 북한이 자국 주재 말레이시아 외교관과 민간인을 전원 억류하는 '인질외교'를 벌이자 굴복해 김정남의 시신을 넘겨주고 이들의 출국을 허용했다.
반면, 북한인 용의자들이 버려두고 간 시티와 흐엉은 범행 2∼3일 만에 잇따라 체포돼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범행 직후 곧바로 출국한 북한인 용의자들과 달리 현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체포됐고, VX에 오염된 옷가지를 숙소에 그대로 방치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지 않은 점은 이들이 '순진한 희생양'일 가능성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말레이시아 법원은 작년 8월 두 사람과 북한인 용의자들 간에 김정남을 "조직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잘 짜인 음모"가 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판시하는 등 유죄에 무게를 둬왔지만, 검찰이 지난 3월 11일 갑작스레 시티의 공소를 취소하자 그를 전격 석방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지난달 1일에는 흐엉의 살인 혐의를 철회하고 상해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으며,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다. '모범수' 흐엉은 감형을 받아 이날 석방됐다.
외교가에선 주범 격인 북한인 용의자를 모두 놓친 상황에서 이들에게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동남아 여성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가는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공소를 취소, 변경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김정남 말레이시아에 왜 왔나…VX 반입경로도 수수께끼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는 김정남이 왜 말레이시아를 찾았는지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자 완 아지룰 니잠 체 완 아지즈는 작년 초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정남이 2017년 2월 9일 말레이시아의 휴양지인 랑카위에서 한 미국인 남성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김정남은 같은 달 6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했고, 랑카위에 도착한 것은 8일이었다.
그는 이후 가족이 있는 마카오로 돌아가려다 살해됐고, 그의 가방에선 12만4천 달러(약 1억4천만원)에 달하는 100달러짜리 신권 다발이 나왔다.
현지 경찰은 김정남이 갖고 있던 노트북에 문제의 남성을 만난 당일 USB 저장장치가 삽입된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사망 당시 김정남은 USB 저장장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 아사히 신문 등 일부 외신은 김정남이 접촉한 남성이 태국 방콕에 머물던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라면서 김정남이 정보를 건네는 대가로 거액의 현금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말레이시아 당국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다른 의문은 VX의 출처와 말레이시아로 반입된 경로다.
유엔이 대량살상무기(WMD)로 규정한 VX는 제조에 대규모 생산시설이 필요해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손에 넣기 힘든 물질이다.
시티와 흐엉이 맨손으로 VX를 취급했던 까닭에 초반에는 각각은 독성이 없지만 섞이면 맹독이 되는 이원혼합물 형태로 제조된 VX가 쓰였을 것이란 가설이 제기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경우 강한 열을 가해야만 독성이 생기는 데다 맨손으로 만져도 빨리 씻어내면 큰 위험이 없다는 점을 들어 완제품 형태로 반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입 수단으로는 '외교행낭(行囊)'이 거론된다.
재외공관과 본부가 주고받는 문서 가방이나 주머니를 뜻하는 외교행낭은 대사관과 마찬가지로 '치외법권'이 적용돼 소유국의 동의 없이 열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VX가 실제로 외교행낭에 담겨 말레이시아로 반입됐는지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사건 연루자들조차 전원 자유의 몸이 된 만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김정남 암살사건을 지시한 배후의 실체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이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 전원이 자유의 몸이 된 만큼 암살을 지시한 배후의 실체는 물론 여태 풀리지 않았던 많은 의문에 대한 해답도 사실상 찾을 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김정남, 백주에 국제공항서 화학무기에 피살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들어선 김정남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여)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31·여)에게 앞뒤로 둘러싸였다.
시티가 김정남에게 말을 건 뒤 그를 향해 팔을 뻗었고, 흐엉은 그 틈을 타 뒤에서 손을 뻗어 김정남의 얼굴에 맹독성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바른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봉변'을 당한 김정남은 근처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문의한 뒤 공항 경찰을 만나 "두 여성이 얼굴에 뭔가를 발랐다"고 밝히고 함께 공항 내 진료소로 이동했으나 걸음걸이가 흐트러지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발작을 일으켰다.
의료진은 약 한 시간 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김정남을 시내 대형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으나, 김정남은 이송 도중 완전히 숨이 멎었다.
말레이시아 화학청 산하 화학무기 분석센터의 라자 수브라마니암 소장은 김정남의 안구와 혈장에서 순수한 VX가 확인됐다면서 얼굴 피부에서 검출된 VX의 농도가 체중 1㎏당 0.2㎎ 수준으로 치사량의 1.4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조기에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말레이 경찰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김정남의 여권에 기재된 국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을 한국으로 착각해 현지 주재 한국대사관에 김정남의 사망을 알렸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당시 이름이 '김철'로 기재된 북한 외교 여권을 갖고 있었다. 한국대사관 측은 김철이 김정남의 가명 중 하나란 사실을 알렸고, 말레이 경찰은 즉각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해 달라는 북한대사관의 요청도 거부했다.
현지에선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김정남의 죽음은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던 북한 국적 외교관이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간주해 그대로 묻혔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김정남 암살 연루 혐의자 전원 도주·석방
당시 경찰은 최소 8명의 북한인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밝혔지만, 이중 체포된 인물은 약학과 화학 전문가로 알려진 리정철(48)뿐이다.
시티와 흐엉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게 한 것으로 조사된 리재남(59), 리지현(35), 홍송학(36), 오종길(57)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한 뒤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 등을 경유해 평양으로 돌아갔다.
주범 격 인물을 놓친 경찰은 리정철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도주한 북한인들에게 차량을 제공하는 등 정황 외에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말레이 당국은 현지 건강식품업체에 위장 취업한 고정간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리정철을 국외로 추방하는 데 그쳤다.
현지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6)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9), 시티를 섭외하고 예행연습을 시킨 북한인 리지우(일명 제임스·32) 등 다른 연루자들도 치외법권인 대사관 내에 숨는 바람에 조사를 하지 못하다가 북한이 자국 주재 말레이시아 외교관과 민간인을 전원 억류하는 '인질외교'를 벌이자 굴복해 김정남의 시신을 넘겨주고 이들의 출국을 허용했다.
반면, 북한인 용의자들이 버려두고 간 시티와 흐엉은 범행 2∼3일 만에 잇따라 체포돼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범행 직후 곧바로 출국한 북한인 용의자들과 달리 현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체포됐고, VX에 오염된 옷가지를 숙소에 그대로 방치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지 않은 점은 이들이 '순진한 희생양'일 가능성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말레이시아 법원은 작년 8월 두 사람과 북한인 용의자들 간에 김정남을 "조직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잘 짜인 음모"가 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판시하는 등 유죄에 무게를 둬왔지만, 검찰이 지난 3월 11일 갑작스레 시티의 공소를 취소하자 그를 전격 석방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지난달 1일에는 흐엉의 살인 혐의를 철회하고 상해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으며,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다. '모범수' 흐엉은 감형을 받아 이날 석방됐다.
외교가에선 주범 격인 북한인 용의자를 모두 놓친 상황에서 이들에게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동남아 여성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가는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공소를 취소, 변경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김정남 말레이시아에 왜 왔나…VX 반입경로도 수수께끼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는 김정남이 왜 말레이시아를 찾았는지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자 완 아지룰 니잠 체 완 아지즈는 작년 초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정남이 2017년 2월 9일 말레이시아의 휴양지인 랑카위에서 한 미국인 남성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김정남은 같은 달 6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했고, 랑카위에 도착한 것은 8일이었다.
그는 이후 가족이 있는 마카오로 돌아가려다 살해됐고, 그의 가방에선 12만4천 달러(약 1억4천만원)에 달하는 100달러짜리 신권 다발이 나왔다.
현지 경찰은 김정남이 갖고 있던 노트북에 문제의 남성을 만난 당일 USB 저장장치가 삽입된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사망 당시 김정남은 USB 저장장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 아사히 신문 등 일부 외신은 김정남이 접촉한 남성이 태국 방콕에 머물던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라면서 김정남이 정보를 건네는 대가로 거액의 현금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말레이시아 당국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다른 의문은 VX의 출처와 말레이시아로 반입된 경로다.
유엔이 대량살상무기(WMD)로 규정한 VX는 제조에 대규모 생산시설이 필요해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손에 넣기 힘든 물질이다.
시티와 흐엉이 맨손으로 VX를 취급했던 까닭에 초반에는 각각은 독성이 없지만 섞이면 맹독이 되는 이원혼합물 형태로 제조된 VX가 쓰였을 것이란 가설이 제기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경우 강한 열을 가해야만 독성이 생기는 데다 맨손으로 만져도 빨리 씻어내면 큰 위험이 없다는 점을 들어 완제품 형태로 반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입 수단으로는 '외교행낭(行囊)'이 거론된다.
재외공관과 본부가 주고받는 문서 가방이나 주머니를 뜻하는 외교행낭은 대사관과 마찬가지로 '치외법권'이 적용돼 소유국의 동의 없이 열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VX가 실제로 외교행낭에 담겨 말레이시아로 반입됐는지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사건 연루자들조차 전원 자유의 몸이 된 만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김정남 암살사건을 지시한 배후의 실체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