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창의력 결정체
어느덧 22회째 맞이한 '바다그리기대회'
온갖 불편 감수 아이들 데리고 온 부모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위한 '훌륭한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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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1950~60년대를 살아낸 어른들은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서 걱정하는 말을 쏟아내고는 한다. 고생하지 않고 오냐오냐하는 분위기 속에서 크다 보니 사회생활의 각박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 그런 젊은이들이 대다수인 우리 사회도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어른들도 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있었던 경인일보 주최 바다 그리기 대회의 풍경을 보고서는 그 어른들의 걱정이 기우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성의를 다한 그림 작품은 창의력의 결정체이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구상을 하고, 어떠한 색깔을 칠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고도의 창의성을 요구한다. 보이거나 상상하는 대상을 사진처럼 보여줄 것인지, 특정한 어느 한 가지를 크게 부각해서 그릴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그 개인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중심 요소이다. 그래서 그 많은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덧 22회를 맞이한 이번 행사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말로 많은 어린이들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미세먼지 경보와 뙤약볕도 그들의 그리기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같이 온 부모들 역시 대단했다. 캠핑족들이 늘어나면서 텐트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인데, 바다 그리기 행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요일 저녁에 미리 텐트를 쳐놓은 부모들도 여럿 있었다. 아이들이 좋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그 부모는 하루 앞서 준비를 했던 거였다. 수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완성한 작품을 들고 행사장에 세워진 무대 위에 오르게 한 뒤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인증샷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인증샷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게 틀림없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주차 전쟁을 치르는 고생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행사장에 데리고 오는 것일 게다.

창의력의 결정체인 그림 그리기는 6·25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종군화가들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전쟁통에도 화가들은 재료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전시회를 열었다. 빵 한 조각 살 돈이 없는 궁핍한 피란살이를 하던 어떤 화가는 상상 속의 캔버스에 상상 속의 작품을 그렸다. 인천미술협회가 결성된 것도 1952년이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 산하의 '대한미술협회 인천지부'는 그때 생겨났다. 김영건, 박응창, 윤기영, 최석재, 박흥만, 한흥길, 장선백, 유희강, 박세림, 장인식, 이경성 등이 참여했다. 전쟁 시기 최초의 미술 비평문을 탄생시킨 것도 인천 출신의 이경성이었다. 해방 직후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한 1세대 미술 평론가 이경성은 당시 젊은 화가 그룹 '후반기 동인'의 피란지 부산 다방에서 있었던 전시회를 일컬어 "내일의 새로운 미를 창조하고자 하는 고민과 자태를 직접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떠한 곤궁 속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많은 이들의 창작 의욕이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바다 그리기 행사장도 난리통이었다. 차를 댈 곳이 없어 주차 전쟁을 치렀고,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뛰어다니는 엄마 아빠, 부모를 잃어버렸다며 울부짖는 아이들도 있었다. 집 나서면 고생이라고 말하면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창의력을 발현시킬 흔치 않은 기회인 바다 그리기 행사를 빼먹지 않고 찾은 아이들은 미래의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은 쪽으로 가는 데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 온갖 불편을 감수하고 행사장에 나온 부모들은 분명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낼 바탕이라고 믿는다.

/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