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301000174200008571
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기자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최근 천만 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이 영화에는 흥행 성적에 걸맞은 역대급 빌런이 등장한다. 이전의 많은 악당들이 지구나 우주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부린 것과 달리, 어벤져스의 '타노스'는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생명체 절반만 남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고, 이를 실현했다. 생명체가 남은 이유도, 사라진 이유도 '절반'이라는 숫자다. 방금 막 태어났다거나, 오랜 계획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거나 등등 개인의 어떠한 사정도 절반이라는 수를 넘어서지 못했다. 세상사라는 것이 각자의 사정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을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걸 보니, 진짜 나쁜 놈이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각자의 사정이 숫자로 인해 묵살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 의왕시 내손동 주민들은 내손 2동에 중학교를 신설해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10년째 요구하고 있다. 내손2동에 사는 아이들은 청계동에 있는 중학교까지 가려면 12개의 건널목을 건너야 하고, 내손1동 아이들 일부는 등하굣길에 모텔촌을 지나야 한다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은 빈 교실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불가 입장을 유지해왔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3년 동안 마음을 졸이거나,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학부모가 되면 사라지곤 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이 무기로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숫자다. 내손동에 있는 3개 초등학교 학생수와 학급수를 파악했다. 1학급당 30명 정원을 기준으로 2개 학교에 모든 초등학생이 수용 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1개 초등학교를 중학교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김상돈 의왕시장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어벤져스가 사라진 절반의 생명을 되찾을 가능성은 14000601분의 1이었다. 승리의 확률로서 의미 있는 숫자는 아니다. 아마 그 숫자는 절실함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