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좋아하는 일 찾아도 실행 쉽지않아
정년 앞두고 서럽고 힘들지만 취미가 '위안'
'지옥'이라도 찾아보면 재밌는 게 있는 법
1980년대 대학 수험생들은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하지도 않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학과를 선택한 부작용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였다. 초·중·고를 합쳐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불확실한 '재수'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학에 다닌 50대 중년들은 이제 정년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쯤 남았다. 이들 중에 뒤늦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다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뛰어드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오랫동안 해온 일을 제쳐놓고 재밌는 일에 뛰어들 용기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작가는 강연 때마다 "100세를 사는데 60세에 정년을 맞고 나면 나머지 40년을 행복하게 지낼 자신이 있느냐"고 묻곤 한다. 김정운 작가는 "작더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 보고, 일상의 삶에서 재미, 행복의 리스트들을 풍요롭게 갖고 그런 구체적인 삶의 순간들을 느끼는 훈련들을 하다 보면 행복해진다"며 그러한 삶을 실제로 사는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지난해부터 동료들과 캠핑을 시작했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금요일 오후 3~4시쯤 출발해 토요일 낮 12시쯤 철수하는 20시간 남짓한 짧은 1박 2일 일정이다. 일정이 맞지 않으면 더러 혼자서도 다닌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금세 적응된다. 지난해 봄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 "가끔 가까운 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바람 좀 쐬고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에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도 굽고, 술도 한잔 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캠핑 시간도 짧은 데다 잔뜩 차려 먹고 난 다음 뒤처리에 시간을 너무 뺏기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캠핑과는 전혀 달랐다. 먹고 쉬는 것은 잠깐이고, 치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쉼'이 아닌 '일'로 주객이 바뀌면서 캠핑이 부담스러워졌다. '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뭘 안 하기 위해'서 시작한 캠핑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요즘은 작은 텐트에 간단히 데워서 먹는 식품 정도를 준비한다. 설거짓거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먹는 것부터 간단하게 준비하고 나니 2~3시간 멍한 상태에 빠지는 즐거움이 생겼다. 이제는 얇은 책 한 권 정도 챙기는 여유도 부린다. 살만해서, 팔자 좋아서 다니나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기에 시작된 일이다.
가까운 선배는 좋아하던 골프를 접고, 탁구에 재미를 붙였다. 운동도 자주 할 수 있고, 비용 부담도 적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나이도 생각하지 않고 과욕을 부려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도 재밌는지 틈만 나면 자세를 잡고 팔을 허우적거린다. 탁구를 시작하고 배가 더 나온 것을 보면 운동보다는 삼겹살 뒤풀이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쨌든 탁구를 시작한 선배는 전보다 웃음이 늘었고, 좀 더 편안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중년으로 사는 것은 서럽고, 힘들다. 거창한 취미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일상에서의 조그만 재미를 찾아보길 권한다. 지옥이라도 찾아보면 재밌는 게 있는 법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