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초·중·고교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설치 운영중이다. 학폭위의 핵심 기능은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 및 징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이다. 학교폭력에 교육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기구이다. 하지만 비현실적 운영방식으로 인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부작용을 양산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인력의 배치와 지원체계가 절대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한 뒤 사실확인에 이어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상담을 진행하고, 양측이 승복할 수 있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단계 마다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피해회복과 가해선도를 위한 상담은 전문기관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모든 과정을 학폭위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 한명이 전담하는 실정이다. 담당 교사는 1건의 학교폭력만 발생해도 모든 업무를 팽개치고 학폭위 전 과정을 진행하는 업무지옥에 빠진다.

현장 교사들은 이처럼 비합리적 운영방식이 학폭위 기능의 왜곡과 마비로 이어져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소연한다. 과도한 업무 부담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설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측과 가해측이 분리되지 않고 피해학생 신분이 노출돼 2차피해를 발생시키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이로 인해 분쟁이 해결되기는 커녕 확대되고 악화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2017년 전국 학폭위 심의건수가 3만1천여건이고 경기도에서만 7천300여건이 학폭위 심의에 올랐으니, 그 안에 내재된 갈등과 상처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학폭위 업무에 대한 현장교사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교육부는 학폭위를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일선 학교는 경미한 학교폭력을 자체 해결하도록 국회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 개정이 실현되면 현장교사는 업무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지만, 교육지원청에 이관된 학폭위가 제 기능을 발휘할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은 25개 교육지원청에 학생상담 센터를 운영중이지만 상담교사는 정원의 절반에 불과하고, 병원형 상담센터는 상담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학폭위를 현행대로 운영해도, 교육부 계획대로 교육지원청에 이관해도 문제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학폭위 문제해결을 위한 교육당국의 현실적 대안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