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2차 무역보복조치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 등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까 우려된다.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소재 수출 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 긴급 안건으로 올려 국제 여론전에 나섰지만, 일본은 문재인 대통령이 요구한 보복 철회는 물론 정부 간 협의 제안조차 거부하는 등 추가 보복까지 예고했다. 특히 경제보복의 빌미를 제공했던 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다루자며 일본이 내놓은 3국 중재위원회 구성안에 우리 정부도 수용 불가 방침이어서 당분간 협상은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가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수출규제를 안건으로 올린 것은 일본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려 교착국면을 타개해보려는 의도다. 또 일본이 제기하는 고순도 불화수소 북한 반출 의혹에 대해서도 "근거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경제 보복을 철회하기는커녕 "중재위 구성에 대한 한국의 답이 없다"며 모든 선택사항을 검토해 대응하겠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하면 우리나라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파급 효과가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각각 70%, 50% 이상의 합계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스마트폰과 차량용 디스플레이 세계 시장에서도 삼성과 LG디스플레이가 1위를 지키고 있다. 만약 수출규제가 장기화 되고 이들 기업이 타격을 입는다면 글로벌 공급망에 큰 혼란이 생길 게 뻔하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위해 30대 기업 총수 등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외교적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한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필요한 대응을 조처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당도 11일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추진 사업을 중심으로 최대 3천억원 수준의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에 반영키로 했다. 핵심은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 및 추가 규제 예상 품목을 중심으로 기술개발, 상용화, 양산단계 지원 등이 주요 골자다.

발등에 불은 떨어졌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 핵심소재 산업을 육성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의 정치적 경제 보복에 더는 우리경제가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