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할아버지 시선·동선 따라
통일문 열고 北 가족과 해피엔딩
작품들 중국·일본어 번역되기도
어린이 신문에 실린 '만화 홍길동'을 좋아했다. 민중의 삶을 담은 민화를 그리는 기법으로 어린이 그림책을 펴내다 3면이 바다, 북으로는 분단의 철망에 가로막힌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펜을 들었다.
어린이 그림책 작가 이억배(59)씨는 한국전쟁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 66주년을 앞두고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의 후속작 '봄이의 여행'을 출간했다.
2010년 펴낸 뒤 지난 3월 영문판으로 번역된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은 망원경으로 북녘 고향 땅을 바라보는 실향민 할아버지의 시선과 동선을 따라가며 허리가 잘린 한반도의 비극을 그려냈다.
어린이 그림책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 마련. 망원렌즈를 통해 바라다본 비무장지대에 다시 온 봄날, 주인공 할아버지와 손자 봄이는 철문 '통일문'을 열어젖히고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그곳에서 북녘의 가족을 만나 포옹한다.
이 작가는 "우리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남북의 갈등과 반목이 아닌 평화를 기억하기를 기원하며 9년 전 비무장지대에서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 가족들이 얼싸안는 컷을 그렸다"며 "아직 시민들이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판문점 선언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최근 북미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고 포옹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더 큰 꿈을 꾸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가 지난달 펴낸 '봄이의 여행'에서 할아버지와 봄이는 경계를 넘는다. 지리산에서부터 시골장 구경을 하다 금강산 아래 장터까지 남북의 민중들과 어울린다. 더 자란 봄이가 두만강역에서 대륙횡단열차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그림책은 끝이 난다.
그의 그림책은 중국어와 일본어로도 번역돼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작가의 그림책 변역가가 한인 어린이들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림으로 평화를 나눠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작가는 "금강산과 개성, 평양에서 북녘의 어린이들에게도 그림책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걸어서 개마고원까지 가는 그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 용인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그림책 '솔이의 추억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등을 그렸다. 2020년 이탈리아에서 25개국 그림책 작가들이 자웅을 겨루는 한스 안데르센 어워즈의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