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연일 대치를 이어가는 한국과 일본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을 앞두고 다시 마주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참가하는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를 이달 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하는 방향으로 3국이 일정을 조율 중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7일 "3국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개최 일자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으나, 중국 측 외교소식통은 "이번 달에 3국이 외교장관회의를 하고, 연말에 정상회의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NHK는 한일중 정상회의가 연내 개최되는 방향으로 조율됨에 따라 오는 21일께 베이징 교외에서 한일중 3개국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예정이며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대응을 협의한다고 보도했다.

한일중 3국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다면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양자회담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통상 3국 장관회의가 열리면 이를 계기로 한일, 한중, 중일 양자회담도 열려 왔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중 외교장관회담 일정이 정해져야 양자 일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 외교장관이 만난다면 이는 공교롭게도 일본 정부의 잇따른 보복성 조치에 대응하는 카드로 거론되고 있는 지소미아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8월 24일을 전후한 시점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지소미아 연장 여부 결정을 목전에 두고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이 만나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에 반전을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일본 정부는 북핵·미사일 등 안보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간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소미아의 유효 기간은 1년으로 기한 만료 90일 전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라도 협정 종료 의사를 통보하면 종료된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다면 양측은 지난달 31일∼8월 3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만나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 이후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지난 1일 양자회담을 했으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이튿날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지만, 미국도 한일 양국간 간극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이미 어려웠던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이 무색하게 한국과 일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전날 히로시마(廣島) 원폭투하 74주년을 맞아 위령식에 참석한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이례적으로 본인 이름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고 아베 총리의 발언으로 "현재 일본이 취한 부당한 경제 조치가 수출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사 문제에 기인한 경제보복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반박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대화채널은 언제나 열려있다며 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하지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불만을 품고 수출규제 강화와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단행한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러한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정해진 수순대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대상국, 이른바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은 지난 2일 각의를 통과했고 이날 관보에 게재됐다. 시행은 이달 28일부터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상태라면 2주∼3주 뒤에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한일 외교장관이 만난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입장만 되풀이한 채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날 공산이 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