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대상을 '입주자 모집공고일'로 확정하면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단지들이 초비상이다.

일정기간 시행을 유보하는 경과규정을 두지 않고 10월초 주택법 시행령 공포와 동시에 곧바로 시행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어서 이대로 시행령이 확정되고, 상한제 지역이 10월중 지정될 경우에는 서울시내에 상한제를 적용받는 정비사업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등은 "고분양가 논란이 많은 정비사업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집값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반기고 있지만 정비업계는 "관리처분이 난 단지들까지 상한제를 적용하라는 것은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과 같다"며 시행일 유보를 요구하고 있다.

◇ 서울 관리처분인가 6만8천여가구 '상한제' 사정권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381개 단지중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는 66곳, 6만8천406가구에 이른다.

만약 10월중 상한제 적용 지역이 결정되면 이 가운데 상당수의 단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시점부터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고 일반분양을 하는 단지가 모두 상한제 대상이 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착공에 들어간 서울 85개 정비사업 단지 가운데서 아직 일반분양 승인을 받지 않는 단지는 10곳, 3천400가구 정도다. 이들 단지는 분양을 서두르면 상한제를 피해갈 수도 있다.

지난 6월 일반분양을 준비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후분양을 결정한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등이 대표적이다.

상아2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도입 계획을 발표한 이후 현재 HUG와 접촉하며 조만간 일반분양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건축 단지들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순간 상한제 대상이 될 전망이다.

현재 철거 단계인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는 이르면 11∼12월께 일반분양이 예정돼 있고,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는 올해 12월∼내년 초, 서초구 반포동 원베일리는 내년 4월에 일반분양이 잡혀 있다.

반포 주공1·2·4주구처럼 관리처분인가는 받았지만 일반분양 일정을 잡기는 커녕 아직 이주도 못한 곳들도 적지 않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사업 초기 단지들은 자연히 상한제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상한제 적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4구 재건축 조합들은 "날벼락을 맞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의 경우 공시지가로 땅값이 산정되면 일반 분양가가 조합이 추가부담금 배분을 위해 확정한 관리처분계획상의 분양가 보다도 낮아질 것"이라며 "조합원 추가부담금이 증가해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사업추진이 중단되는 단지도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립 가구수가 1만2천가구가 넘는 강동구 둔촌 주공의 경우 상한제가 적용돼 분양가가 떨어지면 수익성이 줄어들 전망이다.

건설업계는 둔촌 주공의 상한제 적용 분양가는 3.3㎡당 2천500만원을 밑돌아 HUG 기준 분양가(3.3㎡ 2천600만원대)보다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둔촌 주공 최찬성 조합장은 "정부 발표가 가히 충격적"이라며 "상한제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13일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둔촌 주공 재건축 시공사인 현대건설 등은 일반분양을 10월 중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남뉴타운·흑석뉴타운을 비롯한 대표적인 재개발 사업지도 비상이다.

하반기 분양을 앞둔 동작구 흑석3구역은 재개발 조합이 당초 HUG와 3.3㎡당 3천200만∼3천300만원 선에 분양가 협의를 진행했으나 지난 6월 HUG가 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일반분양가가 3.3㎡당 2천200만원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흑석3구역의 한 조합원은 "상한제를 적용할 경우 분양가를 따져봐야겠지만 조합이 요구하는 분양가 마지노선보다도 낮아지지 않겠느냐"며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의 땅값을 시세의 절반 수준인 공시지가 수준으로 제한한다면 비강남권의 재개발 단지도 사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간 HUG 규제가 터무니없이 낮다보니 강북의 일부 재개발 단지에선 HUG 기준보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게 낫다"는 반응도 있다. 이 때문에 개별 단지들마다 상한제로 인한 영향은 조금씩 다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 종로구 세운정비구역는 HUG의 분양가 규제보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나을 수 있다고 보고 정밀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운구역의 경우 HUG 분양가가 워낙 낮아 HUG 기준보다 상한제가 유리할 수도 있다"며 "다만 정부가 감정평가로 결정할 땅값을 얼마나 인정해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봤다.

◇ 상한제 손질 줄이기 위한 편법 늘듯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일단 정부 규제에 반발하며 집단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주거환경연합 김구철 조합경영지원단장은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단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것은 소급 입법의 문제가 있다"며 "조합장들과 협의해봐야겠지만 헌법소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대규모 청원과 시위도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앞으로 주택법 시행령이 개정되는 동안 규제심사 등을 거치며 관리처분인가 단지들이 상한제를 피해 분양을 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두지 않겠냐는 낙관론도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진 곳은 사업계획과 추가부담금이 확정된 곳들인데 이런 곳들까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 사업 진행이 어려워진다"며 "시행령이 개정될 때까지 유예를 두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앞으로 상한제 적용으로 인한 분양수입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편법도 난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일반분양 물량이 적은 단지 중에는 과거 용산 '한남더힐'처럼 일반분양분을 임대로 돌린 뒤 4년 뒤 분양하는 '임대후 분양'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토부는 이 때문에 상한제를 피할 목적으로 임대후 분양으로 돌리는 '꼼수분양'을 막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임대보증 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임대후 분양전환을 사실상 불허할 예정이다.

조합 1명당 2개의 입주권을 주는 '1+1'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조합원 물량을 늘리는 대신 일반분양 물량을 축소하거나 최근 송파 헬리오시티처럼 일정 부분 '보류지'로 남겨놓은 뒤 준공후 입찰을 통해 매각하는 방법도 동원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마감 수준을 낮추는 곳도 나올 전망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한제를 하면 지금과 같은 고급 마감은 적용하기 어렵다"며 "상한제 분양가를 맞추기 위해 마감 수준을 낮추고, 일반분양분의 주요 마감을 '플러스 옵션'으로 전환하는 등 꼼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