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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흥 사회부 기자
제때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청구서를 들이민다. 청구서를 받아든 이후 선택지는 크게 2가지로 좁혀진다.

늦었지만 당장 비용을 치르거나, 불어나는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정산 시기를 좀 더 늦추는 것. 시기의 차이일 뿐 비용을 떼어 먹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사 청구서'는 누가, 언제 썼는지도 불분명한 행운의 편지처럼 예기치 못한 시점에 또 한 번 날아들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도 과거사 문제를 무시해온 결과물이다. 가해자인 일본정부의 태도는 일일이 거론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무책임하다. 광복 이후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청산'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하기보다 일시적 '봉합'을 택한 한국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최근 경인일보가 연속보도한 '천재교육 총판(대리점) 갑질 의혹'도 과거사 청구서와 관련 있다. 총판들은 천재교육 본사와 거래하면서 많게는 십수억 원대 빚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채무가 생긴 배경에는 판촉비용 떠넘기기, 반품제한, 도서 밀어내기 등 본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 있었다는 게 총판 측 설명이다.

천재교육은 총판들이 하는 대부분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지금 있는 일인 것처럼 악의적인 주장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천재교육의 말은 총판들이 주장하는 갑질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첨예한 한일관계 속에 "미래를 생각하자"면서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으려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2일 총판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고발하는 신고서를 접수했다. 공정위는 총판들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천재교육의 잘못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이 모든 행위가 '제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사 진상조사단'과 같은 별도 조직을 만들어 제때 밝혀내지 못한 억울함을 뒤늦게 들여다보는 건 지금까지 쌓인 사건만으로도 충분하다.

/배재흥 사회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