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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한미군사연습 종료 이후에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서지 않은 채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며 협상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리용호 외무상은 23일 담화에서 "미국이 대결적 자세를 버리지 않고 제재 따위를 가지고 우리와 맞서려고 한다면 오산"이라며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의 가장 큰 '위협'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며 미국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위해 그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반드시 깨닫도록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최근 인터뷰를 거론하며 폼페이오 장관을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의 대미외교를 총괄하는 리 외무상이 카운터파트라고 할 수 있는 폼페이오 장관을 직접 비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북한은 주로 외무성 제1부상이나 미국 담당 국장, 대변인 명의의 담화 등을 활용했으며, 적어도 2000년 이후 '외무상 담화' 형식의 발표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대화 의지를 여전히 고수하면서도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전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한미군사연습과 한국의 첨단 무기 도입 등을 비난하며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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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리용호 북한 외무상,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판문점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과 6·12 북미공동성명 1주년 외무성 대변인 담화 등 여러 기회에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들고나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커녕 한미군사연습 종료로 회담 재개 시점이 도래했음에도 대북 제재 강화 목소리 등을 내는데 대해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리 외무상이 "조미대화가 한창 물망에 오르고 있는 때에 그것도 미국 협상팀을 지휘한다고 하는 그의 입에서 이러한 망발이 거듭 튀어나오고 있는 것은 무심히 스쳐 보낼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데서 이런 속내가 엿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리 외무상의 담화는 본격적인 협상을 앞둔 기 싸움의 일환 아니겠느냐"며 "아직은 고위급회담 성사 가능성 등에 대해 예단하기는 힘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한미군사연습이 끝나면 곧 재개될 것으로 예상했던 북미 실무협상에 북한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북한의 입장 표명으로 미뤄 북미간 실무협상은 리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유엔 총회 이전에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어 보인다.

북한이 지난 6월 판문점 북미정상회동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한 약속에도 협상 재개에 시간을 끄는 데는 대화가 늦어지면 미국이 손해일 뿐 '시간은 북한편'이라는 인식이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제재에 올인하며 서두르는 모양새였으나 충격적인 노딜 이후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 노선을 채택하며 '현상유지' 정책으로 미국과 장기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 다가오는 재선 레이스를 위해 조속한 비핵화 성과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일인지배체제의 북한은 이런 정치적 일정에 구속받지 않는다.

이런 정치 외교적 이해관계 속에서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며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저강도 무력시위를 병행하며 자위적 국방력 다지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