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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충남 아산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중소형 OLED 디스플레이의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삼성전자 제공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 커졌다.

전원합의체는 29일 이 부회장의 사건 중 2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받고 석방됐다.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은 크게 세 가지가 꼽히는데, 이 중 두 가지 판단이 대법원에서 뒤집혀 2심(파기환송심)을 다시 하게 됐다.

우선 2심은 삼성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를 뇌물액에 포함할 수 없다고 봤고,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그만큼의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없었으므로 그에 관한 부정한 청탁이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을 제3자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삼성이 최씨 측에 송금한 78억여원에 대해서는 도피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범죄의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재산국외도피 혐의도 무죄로 결론 내렸다.

1심에서 전부 혹은 일부 유죄로 판단한 이들 세 가지 혐의가 2심에서는 줄줄이 무죄로 바뀌면서 이 부회장은 실형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정유라 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가 뇌물이라고 판단했고, 경영권 승계 현안이 있었다며 제삼자 뇌물 혐의까지도 유죄로 인정된다고 봤다.

◇ 정유라 '말 구입액' 뇌물 인정…형량 가중 불가피

이 부회장의 2심은 삼성이 정유라 씨에게 제공한 살시도·비타나·라우싱 등 말 3마리를 뇌물·횡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질적으로 최순실 씨의 소유처럼 말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인 소유권까지 최씨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근거였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인정된 말 3마리의 값 34억원이 2심에서는 사라졌다. 이 부분은 '가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마필의 무상 사용 이익'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인정된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1심의 72억원에서 36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뇌물로 제공하기 위해 횡령한 회삿돈 역시 그만큼으로 낮춰졌다.

그러나 전원합의체는 "이재용 전 부회장 등이 제공한 것은 말"이라며 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소유권까지 취득하지 않더라도 실질적 사용 처분권을 취득한다면 그 물건 자체를 뇌물로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실질적 사용 권한을 최씨에게 준다는 '의사의 합치'만 있었다면 뇌물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순실 씨가 말이 삼성 명의로 된 것에 화를 낸 사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말의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 사실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말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며 "최씨가 삼성에 말들을 반환한 필요도 없었고, 말들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말들이 다치거나 죽어도 손해를 물어 줄 필요가 없었다"고 못 박았다.

이렇게 2심 판결로 줄어들었던 뇌물액과 횡령액에 대해 3심에서는 다시 증액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 내려지면서 향후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의 형량 가중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어감에 따라 법정형의 범위가 달라진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죄는 횡령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으로, 50억원 이상일 때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한 형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형의 감경을 거쳐 집행유예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혐의들도 여럿 유죄로 인정된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현안' 인정…제삼자 뇌물 16억 추가

전원합의체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이 있었고, 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도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 역시 2심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최소 비용으로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현안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이어 "대통령의 포괄적인 권한에 비춰보면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가관계의 여지가 있다고 보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청탁 대상과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는 없고, 그에 대한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도 충분하다"며 "2심이 '부정 청탁의 대상이 명확히 정의돼야 하고, 청탁도 명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과 그 대가관계가 인정되는 만큼,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하며 근거로 든 것처럼 '명확히 정의된 현안'이나 그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뚜렷한 인식' 등이 증명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부정한 청탁은 제삼자 뇌물죄가 인정되는 데 필요한 구성요소다.

이것이 인정됨에 따라, 2심에서 무죄로 판단 받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이 파기환송심에서는 유죄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에게 제삼자 뇌물 공여죄가 추가로 인정되는 셈이다.

뇌물로 준 16억원만큼 회삿돈을 횡령한 것도 인정되는 만큼. 횡령 금액 역시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 가장 형량 큰 '재산국외도피' 무죄는 유지

다만 전원합의체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가 2심에서 무죄로 바뀐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대해서는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단을 확정했다.

이 부회장이 허위 지급신청서를 제출하고 회삿돈 36억여원을 최순실 씨 소유인 코어스포츠 명의 독일 계좌에 송금했다는 혐의다.

앞서 2심은 이에 대해 "이 부회장 등의 행위가 '도피'에 해당하지 않고, 도피하겠다는 범죄의 고의도 없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단은 상고심에서도 유지됐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죄는 도피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5년 이상의 징역으로, 50억원 이상일 때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이미 특경법상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50억원 넘는 횡령액이 인정된 상황에서, 다시 5년 이상의 징역이 인정되는 재산도피액까지 인정된다면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극히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횡령 외에도 뇌물 혐의 및 액수가 추가된 상황인 만큼 이 혐의가 무죄 판단을 받았다는 점이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