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이(ASF) 11일째 인천 강화군을 중심으로 계속 발병하면서 살처분 대상이 되는 돼지 수도 6만 마리를 넘어섰다.
방역 당국은 살처분 참여 인력에 의한 2차 전파를 막고자 이들을 대상으로 10일간 축사 출입을 막는 한편, 정신적 피해를 막기 위해 트라우마 예방교육과 심리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2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따른 살처분 대상은 34개 농장에서 총 6만2천365마리다. 2만8천850마리에 대한 살처분은 끝났고, 18개 농장에서 3만2천535마리가 남아 있다.
살처분 대상 규모를 고려하면 일정이 다소 늦어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농식품부는 대상 농가 규모가 커 혈액 관리 등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날 오전 강화군 하점면에서 9번째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사례가 발생해 살처분 대상은 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긴급행동지침에 적시된 반경 500m 훌쩍 뛰어넘어 반경 3㎞까지 살처분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반발하지만, 방역 당국은 단호한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양상을 고려해 좀 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3㎞ 살처분도 가능하게 돼 있다"며 "동물 복지를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고자 과감한 조치를 하는 면으로도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또 살처분으로 인한 하천 오염 우려에 대해서는 "과거 루마니아는 감염된 돼지를 강가에 버리면서 하천에 유입된 사례가 있었다"면서도 "우리는 매몰지를 통해 살처분이 잘 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의심 신고→살처분 준비→확진→살처분 돌입'으로 이어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작업에 참여하는 인력 관리도 관건이 됐다.
방역 당국은 살처분 인력은 이미 발병한 농장을 제외한 일반 축산 농장 출입을 막아 그에 따른 추가 발병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일반인이 꺼리는 살처분 작업의 특성상 관련 인력 확보가 어려워 불가피하게 발생 지역 밖에서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만 이들이 일반 농장이 아닌 살처분 대상이 된 다른 농장에는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살처분 인력 이동으로 인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살처분 투입 전 기본 소독을 하고, 방역복 등도 착용한다"며 "살처분이 끝나면 착용한 모든 의복·신발·모자 등은 수거해 소각한다"고 전했다.
손목시계, 지갑 등 태울 수 없는 개인 물품은 소독 후 반출을 허용하고 있다.
또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은 목욕 후 귀가토록 하고, 이후 축사나 관련 시설에 10일간 출입할 수 없게 한다.
해당 지역 내 다른 축산 농가를 비롯해 지자체와 관련 업체에는 참여자의 인적사항을 알린다. 살처분 참여자가 농장을 드나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 역학조사와 추적 관찰을 위해서다.
농식품부는 "대규모 발병으로 살처분 인력이 부족한 경우 지자체가 해당 지역 군 병력의 지원을 요청해 신속한 살처분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이어지면서 살처분 참여자의 심리 상태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공중방역 수의사 268명의 심리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 기준을 넘겼다. 중증 우울증이 의심되는 응답자도 23.1%에 달했다.
과거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으로 100만마리가 넘는 소·돼지가 살처분된 2010∼2011년에는 살처분 작업 참여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을 제정해 살처분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 지원을 규정했다. 우선 살처분·사체처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예방·안전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은 ▲ 질병 특성과 살처분 필요성 ▲ 대상 축종별 살처분 방법 ▲ 소각·매몰 등 사체 처리 및 소독 등 사후처리 방법 ▲ 살처분 경험 후 스트레스 반응 ▲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대처법 등의 내용으로 이뤄진다.
특히 살처분 전 참여 요원에게 전담심리지원 기관을 안내하고, 다른 의료기관에서 심리상담 등을 했을 때도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살처분 참가자는 소각·매몰 뒤 인적사항, 참여 사항, 신체적 사전·사후 체크리스트 문답 결과 등을 전담 심리기관에 제공해 적절한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각 지자체와 전담 심리지원기관은 심리 지원 결과를 시·도를 거쳐 농식품부와 행정안전부에 보고하게 돼 있다.
살처분 참여자를 위한 전담심리지원기관은 각 시·도별로 설치된 행정안전부 재난 심리회복지원센터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