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이 정확한 감염경로를 확인하지 못하는 사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토착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ASF 감염이 확진된 14차 연천농가는 집중방역대 밖 완충지대에 위치한데다, 인근 2차 발생 농가의 ASF 바이러스 잠복기가 지난 뒤에 감염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수평전파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잠복기가 지난 바이러스가 다시 출현하게 된 유력한 원인으로 야생 멧돼지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 2마리와 12일 철원군 민통선 내 군부대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야생 멧돼지 2마리 모두 ASF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달 초 DMZ 안에서 돼지열병에 걸린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된 사실과 연관시켜 보면 북한에서 넘어 온 야생 멧돼지를 ASF 매개체로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만일 북한에서 감염된 멧돼지가 ASF 매개체라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멧돼지의 이동경로는 예측도 통제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SF 감염 멧돼지 폐사체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미 ASF가 강원도까지 확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인적이 드문 산악지역을 서식지로 삼고 있는데다 천적도 없는 멧돼지가 백두대간을 타고 ASF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3일 철원·연천지역 일부를 야생 멧돼지에 의한 ASF 감염위험지역으로 지정하고 총기사용 허가를 비롯해 멧돼지 포획을 위한 긴급대책을 발표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인정한 결과로 보인다. 국방부도 이날부터 접경지역 주둔지·민통선 비무장지대 일대를 정밀 수색하고, 주기적인 예찰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ASF 감염 확진농가가 최초로 나왔을 당시에도 북한발 멧돼지가 감염매개체로 거론됐던 점을 감안하면, 한달 가까이나 돼서야 민통선 멧돼지 관리대책을 내놓은 정부와 군당국의 대응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방부 장관은 야생 멧돼지의 월경(越境) 가능성을 묻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정부는 ASF 방역과 관련해 단 한건의 유의미한 남북 협력을 이뤄내지 못했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멧돼지는 방치한 채 김포, 파주의 사육돼지 전량을 살처분했다. 정부의 뒤늦은 멧돼지 포획 대책은 ASF 확산사태와 관련해 인재 시비를 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