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온 윤모(52) 씨가 경찰에 나와 12시간 동안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화성사건의 피의자인)이춘재가 지금이라도 자백을 해줘서 고맙다"며 그동안 억울하게 살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윤 씨는 27일 오전 1시께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변호사는 윤씨 사건 재심 청구를 돕고 있다.

전날 오후 1시30분께부터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시작하고 약 12시간 만이다.

윤 씨는 "시간이 오래 지난 일이라 기억을 더듬어서 조사받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새로 떠오른 기억은 없고 아는 대로 얘기했다"며 "나는 범인이 아니고 억울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재심을 통한 보상에 관한 질문에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명예가 중요하다"며 "잃어버린 인생을 다시 찾기는 어렵고 그 20년을 누가, 어떻게 보상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전날 조사 전에는 "이춘재가 지금이라도 자백을 해줘서 고맙다"며 "그가 자백을 안 했으면 이런 일(30년 만의 재조사)도 없을 것이고 내 사건도 묻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차례 구타당했고 고문은 3일 동안 당했으며 그러는 동안 잠은 못 잤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관들이 강압수사를 부인하는 것을 두고는 "그건 거짓말이고 양심이 있으면 당당히 나와서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 씨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8차 사건 당시 경찰의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윤 씨를 상대로 과거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그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

윤 씨가 이 사건의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2번째다.

경찰은 앞서 이춘재가 지난달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후 윤 씨와 1차례 면접한 뒤 참고인 신분으로 1차례 조사했다.

이날 조사는 과거 경찰 수사를 받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어서 윤 씨와 경찰관들과의 대질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윤 씨는 당시 경찰관들이 양심이 있다면 강압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자신 앞에서 얘기할 수 있는지 보자며 대질조사를 원하지만, 저쪽에서 강압수사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에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적절한 시점에 이 사건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현재 화성사건 전반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데 8차 사건만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경찰 수사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서 어느 시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이춘재는 법정에 설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범행을 구체적으로 털어놓는 시간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얼마전 경찰에서 제공받은 당시 윤 씨 수사자료를 살펴보고 오늘 조사를 받아보니 과거 윤 씨가 쓴 자필진술서를 비롯해 진술을 사실상 왜곡한 정황이 보이는 등 누가 봐도 황당한 부분이 있다"며 "반면 이춘재의 자백은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여 이 사건 범인은 100% 이춘재"라고 강조했다.

윤 씨가 처벌받은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 양의 집에서 박 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22세이던 윤 씨를 범인으로 검거해 강간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이 사건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보인다고 했다.

윤 씨는 재판에 넘겨져 같은 해 10월 21일 수원지법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법원에서도 무기징역을 확정받아 20년을 복역한 끝에 2009년 가석방됐다.

1심 이후 줄곧 무죄를 주장해온 윤 씨는 이춘재 자백 이후 박 변호사와 함께 이 사건 재심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