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터진뒤에야 위험성 알아
타 업체들 기술력 믿고 도와줘 버텨
은행과 재협상 회사 되살리기 기대
은행들이 '키코(KIKO·외환파생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던 지난 2007년 김기형(66) 진흥공업 대표 사무실을 찾아온 은행 영업직원이 건넨 말이다.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선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해당 은행에 빌린 자금만 50억원에 달해 사실상 '을의 위치'에 있었던 데다 대형 시중은행이다 보니 김 대표는 별 의심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진흥공업의 연간 수출 실적보다 더 많은 40억원 수준의 키코 계약서였는데, 김 대표는 이날을 '키코의 악몽'으로 기억한다.
이듬해인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환율이 키코 보장 범위를 훌쩍 넘길 만큼 치솟아 2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구해 은행에 되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처럼 키코 계약이 날벼락으로 돌아온 뒤에야 상품의 위험성을 알게 됐다.
김 대표는 "금융위기가 터지고 얼마 뒤 은행 직원이 다시 찾아와서는 도장을 하나 내밀었다"며 "당초 키코 계약을 맺었을 때 위험성에 대한 설명도 전달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서류였는데, 도장을 안 찍으면 은행에 있는 회사 자금이 모두 동결돼 방법이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키코 사태가 터진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진흥공업은 총매출 180억원 이상, 수출 실적이 30억원에 달하는 유망 기업이었다. 중국·유럽 등에 플라스틱 필름을 제조해 수출했는데, 당시 유럽의 대형 동종 업체가 진흥공업에 공동 벤처계약을 제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실제 진흥공업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우레탄 TPU'와 '태양광 EVA' 등을 비롯해 총 12개의 특허기술을 갖고 있다.
하지만 키코 때문에 매년 수억 원을 은행에 갚아야 했던 데다 유럽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지난 2017년 결국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김 대표는 "그나마 보유한 특허기술을 믿고 도와준 기업들 때문에 회생절차도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은 기업들은 이미 파산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키코 피해로 회생절차까지 밟게 된 회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조만간 나오게 될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을 토대로 은행과 다시 협상을 시도해 잊을 수 없는 10년 전 키코의 악몽을 꼭 씻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