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경기도 연천, 파주, 김포와 인천 강화 등 수도권 접경지역 4개 시·군의 양돈농가는 지독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당국은 ASF 방역을 위해 4개 시·군 246개 양돈농장에서 사육하던 41만7천여 마리를 모조리 살처분했다. 농가에서 부업 삼아 키우던 한 두마리도 예외없이 살처분됐다. 경기도가 살처분 완료를 선언한 11일 이후 이들 지역에서는 돼지씨가 말랐다.

정부는 4개 시·군 돼지 절멸 처분으로 ASF 확산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하며 한숨 돌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4개 시·군 양돈농가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계수단인 사육돼지들이 하루 아침에 증발된 상황을 ASF 발병 이전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연천의 일부 양돈농가 대표들이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까지 반발했던 이유다. 법원은 지난 1일 선고를 통해 살처분이 공공복리에 부합하고, 처분으로 인한 손해를 금전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 손을 들어 주었고, 이후 돼지 살처분은 급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양돈농가 대표들이 소송 당시 제기한 살처분 취소 이유를 들여다 보면 정부의 살처분 결정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들은 정부의 돼지절멸 결정이 역학조사라는 과학적 근거를 결여한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유입경로를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자, 발생지역 돼지절멸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 연천군의 한 ASF 발생농가와 가까운 철원의 양돈농장은 놓아둔 채, 같은 연천이라는 이유로 발생농가와 거리가 먼 양돈농장 전체를 살처분한 것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라고 강조했다.

비록 법원은 사태의 긴급성을 감안해 정부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이지만, 연천군 등 살처분 4개 시·군 양돈농가의 문제 제기 자체는 상식적으로 타당하다. 정부는 4개 시·군 사육돼지 절멸 조치로 전국 양돈농가를 ASF로부터 보호하는 공공복리를 실현했다고 강조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 양돈농가를 위해 자신의 양돈사업을 깡그리 희생한 4개 시·군 양돈농가의 피해를 완벽하게 복구해주어야 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살처분 피해 농가들이 재입식을 통해 재기하려면 ASF가 최종 종식된 이후에도 21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정부는 피해농가들이 ASF 이전 상태로 재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보상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