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29일 국회 본회의 모든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신청한 것은 소속 의원 대다수도 미리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이 아직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구사한 '저지 작전'에 허를 찔린 것이 더불어민주당만은 아닌 셈이다.

필리버스터를 통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 전략은 그간 다수의 의원이 언급했으나, 이날 원내대책회의가 끝난 오전 10시까지만 해도 나경원 원내대표는 "아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쳤다.

나아가 한국당은 이날 상정되는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자체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이날 본회의에 참여해 해당 법안에 대한 표결 처리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는 오후 1시 30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 방침을 발표했다. 불과 3시간 30분여만에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한 3선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올라오기도 전에 필리버스터로 봉쇄한다는 아이디어는 그간 의원총회 등에서 전혀 공유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의총에서 원내지도부가 선(先) 필리버스터 전략을 내놨고,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대응법이라는 점에서 별다른 반대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같이 급작스러운 기류 변화를 황교안 대표의 단식과 연결 짓는 시각이 나온다.

이날 단식 중단을 밝힌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법안 총력 저지'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여론의 비판이 예상됨에도 의총에서 '필리버스터 작전'이 별 반대 없이 승인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날 오전 나 원내대표가 입원한 황교안 대표를 병문안한 뒤 마음을 굳혔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 관계자는 "이 정도 사안이면 당연히 황 대표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재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상당 기간 검토하고 준비한 것으로 안다"며 "아마도 보안을 지키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