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 미군기지 '부평캠프마켓' 반환
전국 폐군수장비 처리 오염도 가장 심한곳
미군, 오염물질 제대로 정화않은채 파묻어
합의에 빠진 정화비… 혈맹이 할 도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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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북미관계가 심상치 않다. 남북관계도 덩달아 얼어붙었다. 미국이 며칠 전 유엔 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자 북한은 잇단 ICBM 관련 시험으로 맞받아쳤다. 그야말로 한반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제재 강화를 관철하려던 미국과는 결이 다른 목소리였다. 중국은 줄곧 북한을 지지해 왔다. 그에 비하면 요즘의 한미 관계는 묘하게 흐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액 대폭 증액 요구로 인해 전통적 우방이란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삐걱대고 있다.

혈맹(血盟). 한미관계를 일컬을 때도, 북중 관계를 지칭할 때도 흔히들 이렇게 표현한다. 혈맹은 피로써 관계를 맺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보면, 서로 손을 벤 뒤 그 피를 사발에 담아 돌려가며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런 게 혈맹이다. 1945년 8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했다. 그 틈에 소련이 만주지역(동북 3성)을 차지했다가 1년여 만에 철수했다.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국민당의 장제스 부대와 마오쩌둥의 공산군 사이에 전쟁이 치열했다. 국공내전이다. 공산군의 열세였다. 북한지역에는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무기가 많았다. 김일성은 이를 아낌없이 마오의 공산군에 지원했다. 올해 70주년을 맞이한 중국 정부 수립의 발판이 되었다. 중국은 6·25 전쟁에서 북한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막대한 손실을 입어가면서도 군을 투입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이때 전사했다. 누가 보아도 피를 주고받은 혈맹관계다.

한국과 미국도 혈맹관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 중 3만명 이상이 전사했고, 10만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미군은 낙동강까지 내몰린 남한을 구했다. 한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미국의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엄청난 수의 한국군이 머나먼 베트남 땅에서 전사했다. 지금도 고엽제 피해에 몸서리치는 이들도 많다. 미국을 위해 흘린 피다. 이렇듯 한국과 미국은 서로를 위해 피 흘림을 주고받았다.

최근 한미의 혈맹은 어딘지 모르게 피 냄새가 싹 빠진 느낌이다. 북한과 중국의 그것에 비하면 사뭇 가볍게 다가온다. 미국은 한국 방위를 위해 주둔하는 미군 비용을 여섯 배나 더 내라고 옥죄고 있다. 걸핏하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친다. 미군 비용을 우리가 어디까지 부담하는것이 맞는 것일까. 6·25 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에치슨 라인'이다.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남한을 제외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남한을 방어선에서 제외한 대가를 정말이지 혹독하게 치렀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게 바로 이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 개념이다. 북한이나 중국과 맞닿아 있는 한국은 언제든지 미국의 제1전선이다. 일본은 그다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군 없이 한국군 단독으로 방위태세를 유지하는 데에도 미국이 방위비를 분담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중국이 북한을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보면 중국은 북한을 중국의 제1전선으로 확실하게 여기는 듯하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 최초의 미군기지로 시작한 부평 캠프마켓이 드디어 우리 땅으로 돌아왔다. 그 미군기지 반환소식을 접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한 군수기지로 건설한 부평기지를 한국 주둔 미군이 그대로 넘겨받았다. 미군도 이를 군수기지로 사용했다. 부평은 한국 주둔 미군기지 중 오염도가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하다. 전국 미군기지의 폐군수장비를 처리하는 곳이 부평이었는데 미군은 오염물질을 제대로 정화하지 않고 그냥 묻었다. 그 미군기지 반환 합의에서 오염 정화비용 문제가 빠졌다. 미군이 저지른 일을 한국이 떠안을 공산이 커졌다. 혈맹이 할 도리가 아니다.

/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