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열릴 예정이던 여야 3개 교섭단체(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의 회동이 무산되고, 본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원래 본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한 각 정당의 견해 차가 좁혀지지 않은 결과다. 게다가 한국당이 임시국회 회기 결정에 대해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져 교섭단체 회동이 끝내 불발됐다.

지난 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한 이후에 한국당은 8개월 이상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비례대표를 폐지하는 안을 내놓았다. 물론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제에 합의했던 정신은 정당득표를 존중하고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고시키는 것임을 감안하면 뜬금없는 안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과 다른 야당이라고 사정이 나을 게 없다.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의 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후에 각 정당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른바 4+1 협의체에서 250 대 50까지 의견이 모아졌으나 비례대표 50석 중 30석에만 준연동형을 적용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사표를 방지하고 시민사회의 이해가 골고루 반영됨으로써 다당제를 통한 협치와 거버넌스를 제고하고자 했던 제도 개정 본래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지역구 대 비례대표의 비율이 250 대 50이라면 현행 253 대 47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여야 정당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선거법은 어떻게 든 결말을 지어야 한다. 오늘부터 예비후보 등록일이다. 선거구 획정은 선거법에 의하면 선거일 1년전에 획정되어야 한다. 모두 법을 어기는 일을 아무 죄책감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지금이라도 여야 정당은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을 최소화하고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고 그 많은 시간을 정쟁으로 허비하더니 시간에 쫓겨 내놓은 안이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시 여야가 테이블에 마주앉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선거법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국회라면 내년 선거에서 모두 심판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