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회사원 A(34·남)씨는 3년 넘게 만난 애인 B씨와의 결혼식을 취소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진단서 양식을 내려받고, 환자 성명란에 자기 이름을 입력했다.

병명은 '위에 상세불명의 악성 신생물'. 향후 치료의견 란에는 'CT, 초음파 등 검사 결과 위암으로 진단됐으며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발견됨'이라고 적었다.

진단서 발급 기관을 속이고 의과대학 병원 의사 이름을 빌려 허위 작성한 뒤 사무실에서 진단서 파일을 출력했다.

이 진단서를 사진 촬영해 애인 B씨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A씨는 2014년 6월 결혼을 전제로 B씨와 만났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결혼할 마음을 접었으나 B씨와 B씨의 어머니로부터 결혼 준비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내기로 했다.

본격적인 범행은 2017년 4월부터 시작했다. 그는 결혼식장 계약금 400만원이 필요하다고 속이는 등 5차례에 걸쳐 B씨로부터 2천700여만원을 송금 받았다.

B씨의 어머니 C씨에게는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하게 됐는데, 아버지에게 받은 집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갈 판이라고 속여 1천200만원을 송금받았다.

꼬리를 밟힌 A씨는 결국 B씨 등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수원지법 형사2단독 우인선 판사는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예정된 결혼식을 연기하려고 진단서를 위조해 행사하는 행위까지 감행했다"며 "피해자와 그 가족은 금전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배신감 역시 상당하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